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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살이 / 201703]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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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해야 할 일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소장)

     




    "저는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


    지난 216, 대선 후보 중에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 씨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며 여성 관련 정책을 발표하던 자리에 참석했던 활동가가 문재인 후보에게 기습적으로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지난해 페미니스트 바람이 불었던 게 확실한가 봅니다. 정치인이 페미니스트를 앞세우다니 말입니다. 활동가의 질문에 대한 문 씨의 답변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차별금지가 규정되어 있으므로 별도의 차별금지법 제정은 하지 않겠다 였습니다. 문재인 씨의 지지자들은 그 자리에 가득 찼습니다. 이 활동가가 질문하는 동안에 그들은 함께 외쳤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지긋지긋하게 많이 들어온 말입니다. 문 씨가 이 자리 며칠 전에 보수기독교단체를 방문해서는 "동성애는 지지하지 않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런 말이 맞을까요? 정체성의 문제인데, 그걸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고 할 성질의 것인지부터 묻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장애인은 지지하지 않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라고 말했다면, 어떨까요? 장애인을 지지하고 말고 하는 게 아닌 것처럼 동성애는 지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지와 반대의 문제가 아닌데


    인권을 옹호한다는 말은 인권의 보편성을 지지한다는 말입니다. 한 쪽에서는 시민·정치적 권리를 지지한다고 하고서, 다른 곳에서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지지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은 인권의 보편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자유를 옹호하면, 평등도 옹호해야 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소수자의 자유와 평등도 당연히 포함될 뿐만 아니라 인권은 소수자의 자유와 평등을 향한 연대를 특히 강조합니다. 소수자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대우를 받는 세상이라야 다른 이들도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세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계속 무산되어 왔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7, 이명박 정권 때인 2010, 박근혜 정권 때인 2013년 등등. 모두 보수 기독교계의 반대에 부딪혀 후퇴했습니다. 호기롭게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섰던 정치인들은 기독교계가 동성애조장법이라고 들고 일어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발의했던 의원이 법안을 철회하든지 아니면 큰 당들 중심으로 당론으로 처리하지 않기로 하면서 계속 미루다가는 폐기시키고는 했습니다. 합리적인 이유도 없었습니다. 차별과 혐오의 심각성을 외면한 채 기독교계의 억지 주장에 굴복하고 말았던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412월이었습니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민들이 만든 서울시민인권헌장을 결국 선포하지 못했습니다. 문재인 씨와 똑같은 과정이었습니다. 박원순 시장도 마찬가지로 보수 기독교계 앞에서 같은 말을 했습니다. 문재인 씨도 인권변호사 출신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인권이라는 게 뭘까요? 우리의 수준은 아직도 이 정도밖에 안 되나요?


    차별을 넘는 촛불


    차별금지법은 인권기본법입니다. 헌법에서 선언한 인간의 존엄을 보다 확실하게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선언입니다. 사회 곳곳에서 차별과 혐오가 심해지고 있고,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상황입니다. 차별과 혐오가 범죄로 이어지고 있는 이때에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더 이상 미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광장의 촛불집회에서는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명확한 움직임을 보았습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 발언은 금지되었습니다. 민주노총과 같은 조직에서도 발언 때에 이런 말을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을 보고는 감격했다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촛불집회 이후 진행된 많은 시민토론회에서 나온 시민들의 말들을 키워드로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차별과 혐오, 평등이 민주주의보다도 더 많이 나왔습니다. 촛불을 들고 나오는 시민들은 정치인들과 달리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늘 국민의 의식수준을 정치가 못 따라고 있음이 여기서도 보입니다.


    지난 227, 인권재단 사람에서 주최한 365클럽 강연회 때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인권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껏 인권의 중심은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였고, 그래서 자유가 중심이었습니다. 반면에 지금은 양극화와 차별 등을 심각한 인권문제로 인식하고 있고, 따라서 평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유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 평등이 그만큼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 왔다는 얘기라고 들었습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사람의 관계를 지향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 말한 활동가는 여성이고, 성소수자입니다. 존엄한 존재인 사람은 정체성을 부정당하지 않고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국가는 그런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의무주체입니다. 그러기에 한 줌의 보수기독교세력 앞에만 서면 꼬리를 내리는 정치인들의 힘이 아니라 대통령도 권좌에서 끌어내린 광장 촛불의 힘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꼭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중으로 미룰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그것이 차별금지법의 제정입니다. 올해 인권재단 사람은 차별금지법의 제정활동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첨부파일 사람살이20170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