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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재단사람 지난사업
  • 하늘을 듣는다
    • 작성일
    • 2011.06.20
    • 조회수
    • 3448

  • “이 책을 이 땅의 모든 HIV/AIDS 감염인들과 
    성소수자들(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그리고 한영애님께 바칩니다.”

    윤 가브리엘은 2008년 7월부터 7개월 간 인터넷방송국 참세상의 별라디오 DJ로 활동했다. 차분하면서도 슬픔을 띈 그의 목소리가 음악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에 흘렀다. 가브리엘만의 선곡, 가브리엘만의 이야기로 채워진 그 방송은 1년을 넘지 못했지만 그의 노래는 긴 여운을 남겼다. 청취자들은 에이즈 환자로만 알려진 윤 가브리엘이 아니라 음악을 운명적으로 만나서 깊이 사랑하고,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 그를 알게 되었다. 
    그의 삶의 노래가 이제 글로 태어났다. 이 책은 격월간 인권잡지『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 연재되었던 자전적 수필「윤 가브리엘의 노래이야기」를 다시 보완하고 다듬어 엮은 것이다. 

    “그렇게 노래 속에 살다가 내 마음을 알고 만든 것 같은 노래들을 만나게 되었다. 열다섯 시간을 숨이 턱에 차도록 일하다 지쳐 자취방에 돌아갈 때 내 지쳐버린 밤을 노래가 달래주었다. 성 정체성으로 인한 고민을 하며 갈 길이 어디인지 몰라 할 때 가려진 나의 길을 노래가 찾아주었다. 에이즈란 병마가 내 몸을 가시나무처럼 앙상하게 만들어 뼛속까지 외로울 때 노래가 슬퍼해주었다. 그 고단하고 아팠던 삶에 노래가 위안이었고, 노래 속에서 삶을 배웠다. 노랫말이 나를 생각하게 하고, 삶을 깨닫게 해주고,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자연의 이치가 삶의 이치라는 걸 깨닫게 해준 노래, 삶에 대해 알려주고, 조언해주는 사람 하나 없는 나에게 노래를 통해 삶을 가르쳐준 사람이 한영애님이었다. 그리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년에 한 번씩 나오는 한영애님의 새로운 노래들은 마치 그때의 내 심정을 알고 만든 것 같은 노래들이 꼭 있었다.” 


    1장 떠도는 아이
    책은 ‘떠도는 아이’, 가브리엘의 유년시절부터 시작된다. 친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구박만 받는 집을 떠난 가브리엘은 공장노동자가 된다. 중학교도 마치지 않은 어린소년이 쉴 곳은 재단판 아래 외에는 아무 곳도 없었다. 
    박인희의 <방랑자>, 만화영화주제가 <엄마 찾아 삼만리>, 동요 <섬집 아기>가 이 시절 가브리엘의 친구가 되어준다.  

    “그 공장은 여자들만 기숙사 방이 있었고 남자들 방은 따로 없었다. 재단판 밑에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서 자야 했다. 밤늦게까지 일해 피곤한 몸으로 재단판 밑에 자려고 누우면 그동안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깨져가는 빙판 위를 뛰어가듯 두려움에 떨며 집을 뛰쳐나온 일, 하지만 뒤돌아보면 뭔가가 잡아당길 것 같아 뒤 한 번 안 돌아보고 이 낯선 곳까지 도망 오게 된 일. 이 먼 데까지 왔으니 큰형도, 아버지도, 누구도 날 찾지 못할 거란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원하던 집밖의 세상에 나오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다는 걸 알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어도 이 넓은 세상에 혼자라는 사실에 울적해지며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닥칠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럴 때 누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한동안 부르지 않았던 그 노래, 친어머니가 생각나서 더욱 부르지 않았던 그 노래 섬집 아기를 속으로 불렀다.” 

    2장 미싱이 돌고 나의 노래도 돈다
    집 떠난 가브리엘은 15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리는 먼지 날리는 봉제공장에서 청춘을 보낸다. 80년대 민주화의 열망이 한국사회를 강타하지만 봉제공장 노동자 가브리엘은 자신들을 노래하는 <사계>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자 오히려 어리둥절해한다. 아버지의 때 이른 죽음마저 찾아와 슬퍼하는 가브리엘에게 미싱사 오야 누나들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 한편 성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과 괴로움이 더욱 심해진다. 
    신형원의 <잃어버린 밤> 나훈아 <고향역> 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계>가 여기서 흐른다. 


    ⓒ 김대중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우리는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 노래 미싱이라고 한 거 맞지?”누군가 물었고 잠시 일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미싱 맞네.”다들 신기해하며 웃었다. 노래 가사에 미싱이 나오는 노래가 다 있다며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고들 하였다. 라디오에서 그 노래는 자주 나왔고, 그 노래가 나올 때마다 “그럼 미싱이 돌아야 먹고 살지, 미싱 안 돌리면 누가 밥 먹여주냐?”며 다들 웃었다. 저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전직 미싱사 출신이 아니었겠냐는 우스갯소리를 했고, 누군가는 만들 노래가 그렇게 없어 미싱을 노래로 만드느냐고 타박하기도 했다. 나른한 게 졸립다며 노래 좀 바꾸라고 누가 소리쳤고 재단사 아저씨는 삼태기 메들리에 이어 주현미의 쌍쌍파티 메들리를 틀었다. 나 역시 그 노래 사계가 어떤 의미의 노래였는지 몰랐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무엇을 위한 노래였는지 알지 못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란 노래패는 청계피복노동조합만큼이나 생소했고 낯설었다. 사람들은 이제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이루어져 많은 변화가 생길 거라고 하였다. 하지만 평화시장 공장들은 문을 안에서 잠그고 열다섯 시간 일을 시키는 건 변함이 없었다. 군사독재가 뭔지 민주화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스무 살, 1987년 내 최대 관심사는 하루빨리 더 많은 미싱 기술을 익히는 것이었다.”

    3장 게이, 장밋빛 인생을 노래하고 싶었다
    성정체성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즈음 가브리엘은 가수 한영애의 노래를 만나 평생 위로와 안식과 힘을 얻는다. 자신을 혐오하다 못해 자살까지 결행했지만 실패한 가브리엘은 남자를 좋아하는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때 한영애의 노래가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준다. 이후 한영애의 팬으로 그녀와 인연을 맺고 이 책의 많은 곳에서 한영애가 등장하며 책을 헌사하는 배경이 된다.
    낙원상가 데뷔. 양성애자들은 쉽게 알 수 없는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는 가브리엘. 동성애자임을 인정했으나 그가 사랑할 사람을 만나는 곳은 낙원상가 어둠침침한 카페였다. 같은 ‘인류’를 만날 수 있다는 안도는 길게 가지 못하고 연이어지는 사랑의 실패에 괴로워하는 가브리엘에게 노래는 다시 위안이 된다.
    유재하 <가리워진 길> 한영애 <갈증> <바라본다> 에디뜨 피아프 <장미빛 인생>이 가브리엘 곁에 있어준다. 

    “전화를 끊자 뭔가 큰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종로를 배회하며 밤 열 시가 넘기만을 기다렸다. 다시 그 술집 앞에 서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하로 내려가면서 긴장이 더해졌다.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여니 음악소리와 함께 “어서 오세요” 하는 아까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나는 바짝 긴장한 채 종업원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나를 알아본 종업원은 웃으면서 바 쪽에 앉으라고 했다. 자리에 앉아 둘러보니 바와 테이블에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저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니 신기하기만 했다. 종업원은 아까 왔을 땐 일반 손님인 줄 알았다고 말을 꺼냈다. 초저녁에 간혹 일반 손님들이 멋모르고 와서 조심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중년의 어떤 남자가 내게 인사를 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쯤으로 보이는 그는 자신을 마담이라고 소개하였다. 마담은 그 나이의 아저씨들처럼 적당히 머리숱도 없고 평범한 인상이었지만 뿌옇게 분칠한 얼굴과 펜슬로 가늘게 그린 눈썹이 좀 이상했다. 그는 내 옆에 앉더니 종업원에게 나에 대해 들었다며 이것저것 물어왔다. 나이를 묻고 이름을 묻고 이런 곳에 오늘 처음 나온 거냐고 물었다. “네”라고 대답하자 “그럼 오늘 데뷔한 거네”라고 했다. “데뷔라뇨?” 하고 되물었더니 이런 세계에 처음 나왔을 때를 데뷔라고 한단다. 무슨 연예인이야, 나는 피식 웃었다. 식성이 뭐냐고 묻기에 뭐 다 잘 먹지만 밀가루 음식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초짜 맞네. 그 식성 말구 좋아하는 남자 스타일 말이야. 그런 걸 식성이라고 해.” 마담이 웃으며 말했다. “아! 예, 잘 모르겠어요.”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연탄불에 달궈진 양철통에 데인 팔목의 상처가 더 씁쓸했다. 자살을 시도한 후 2년여의 시간 동안 남과 다른 내가 남과 똑같은 내가 될 수 없을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밤이면 깊은 생각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무얼 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과 다른 나를 억누르고 남과 똑같이 살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한영애가 내 안의 나를 똑바로 바라보라고 노래해주었다. 
    내 안의 나를 바라보면 남과 다른 내가 있고 그걸 인정하는 것이 자유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이성에게 끌리는 게 본능적인 거라고 얘기하듯이 내가 동성에게 끌리는 것 역시 본능적인 것이었다. 그 본능은 거부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내 성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나는 나! 남과 다른 나를 인정하고 다시 종로를 찾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4장 나, HIV/AIDS 감염인이 되었다
    새천년 HIV/AIDS가 가브리엘을 찾아온다. 보건소 직원에게 에이즈 감염 사실을 통보받는 가브리엘은 오히려 담담했다. 얼마 후 슬픔과 절망은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브리엘을 덮친다. 일을 그만두고 쉼터를 찾아가고, 에이즈와 싸우는 한편 몸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약과도 싸워야 했다. 면역력은 바닥나고 거대세포바이러스가 가브리엘의 목숨을 위협한다. 죽음의 고비까지 간 가브리엘은 다시 되살아난다. 왼쪽 시력을 빼앗기고 청력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그는 살아났다.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오면서 에이즈는 저주받은 불치병이 아니라 약만 제대로 투여하면 관리할 수 있는 병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의 몸이 그것을 증명했다. 
    시인과 촌장 <기쁜 보리떡> <가시나무> 복숭아 <햇님> 이문세 <광화문 연가> 속에서 가브리엘은 다시 살아난다. 

    “기운도 없고 정신도 없고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누군가의 손이 내 이마를 어루만지고 있다. 그 손길에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 누구의 손인지 얼굴을 보려했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내가 그리워하던 친어머니가 아닐까? 엄마? 엄마? 신음소리처럼 부르다가 눈을 떴다. 꿈이었지만 너무 생생한 그 손길의 여운을 생각하며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친어머니가 생각났던 ‘시인과 촌장’의 기쁨 보리떡을 찾아 들었다.
    ‘친어머니가 지금 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 살 때 친어머니와 헤어진 후 친아버지와 키워주신 어머니, 이복형제들과 살면서도 항상 혼자였고 집을 나와서도 늘 혼자였지만, 혼자라는 사실이 이렇게 아프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난 이제 어떡하나! 보건소에서 받았던 충격적인 통보가 그제야 실감이 났다. 누가 들을세라 이불을 입에 틀어막고 소리죽여 흐느꼈다.” 

    “다른 질병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2년여를 버텼지만 결국 거대세포바이러스가 다시 또 찾아왔다. 지금까지 투병하면서 최악의 몸 상태였던 2006년 봄부터 겨울까지 입원했다 퇴원했다를 다섯 번이나 반복하며 사계절을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거대세포바이러스는 면역력이 심하게 결핍된 내 몸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제를 일으켰다. 대장에 와서 하루에도 열두 번이 넘는 설사를 하게 하고, 신경계에 와서 다리에 마비 증상까지 나타나게 하였다. 망막에도 찾아와 눈이 잘 안 보이게 만들었다. 그 겨울은 최악의 절정이었다. 거대세포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약마저 내성이 생겨 새로운 약을 써야 했으나 그 약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한 달에 약값이 2백만 원이 넘게 들었다. 난 그 약값을 감당할 돈이 없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들이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우선 약값을 댔다.”

    “병실에서 주사를 맞으며 눈 내리는 겨울을 보내고 있었고, 나누리+ 친구들은 주사약값 마련을 위한 후원회를 조직해 한 달에 2백만 원이 넘는 약값을 댔다. 그 주사제는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맞아야 했다. 퇴원을 해서는 쉼터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와 간호사 수녀님이 번갈아 가며 주사를 놔주었다. 매일 360cc의 주사제를 두 시간 이상 혈관에 맞으면서 거대세포바이러스와 1년 9개월간의 끈질긴 싸움을 끝냈다. 주사를 끊던 날 나누리+ 친구들과 기념 파티를 하고 쉼터에서 식구들과도 파티를 했다. 이 주사를 끊고 난 후 에이즈치료제인 ‘푸제온’치료에 들어갔다. 나에게 꼭 필요한 에이즈 치료제지만 제약사 로슈가 비싼 약값을 요구하며 공급하지 않아 쓸 수가 없었던 푸제온을 외국의 구호단체에서 어렵게 도움을 받았다. 푸제온을 투여하자 면역력이 오르고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HIV가 억제되어 나는 다시 살아났다.” 

    5장 그래도 나는 희망을 노래한다
    가브리엘은 새 삶을 맞는다. 육체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동성애자인권연대의 문을 두드렸다. 용기를 내어 에이즈 감염인이라고 고백했다.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여주는 사람들,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들을 만난 가브리엘은 세상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 에이즈 환자들이 받는 차별에 대해 묻어두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질병과 차별의 연결고리를 깨닫게 되었고, 그것을 조장하는 자들에게 저항하는 에이즈인권활동가가 되었다.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주사약값을 친구, 활동가 동료, 수녀, 의사 등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으며 자신의 몸이 죽음에서 되돌아온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임을 증명해낸다.
    김광석 <서른 즈음에> 한돌 <꼴지를 위하여> 강산에 <넌 할 수 있어> 한영애 <말도 안 돼>가 가브리엘의 투쟁의 깃발이 되어준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쌓일수록 분노도 쌓여갈 때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연락이 왔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이란 곳에서 주최하는 ‘아시아 보건포럼’이 열리는데 프로그램 중 아시아의 에이즈 문제를 토론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한국의 문제에 대해서 발언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감염인이란 사실을 밝히고 얘기를 해야 설득력이 있을 텐데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이런 부당한 일들에 아무도 나서서 말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사람들의 부담스런 시선보다 내 안의 분노가 더 컸다.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HIV/AIDS 감염인이란 사실을 밝히고 서 있자니 마이크를 잡은 손은 떨렸고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배운 것 가진 것을 따지는 세상에서 나는 꼴찌였고 꼴찌라서 힘들었지만 늘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사람들에게 배우면서 몸으로 부딪히고 깨지는 경험을 하며 살아온 나였다. 과거에는 꼴찌라는 게 창피했지만 이제는 당당한 꼴찌가 되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졌다. 사람들에게 잘못된 걸 잘못되었다 말하려면 당당해야 하고 당당하려면 배운 것 가진 것 없는 것에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이즈인권활동이란 새로운 숙제 앞에 놓인 나에게 꼴찌를 위하여가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때 나는 HIV/AIDS 감염인으로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6장 고마운 사람들, 엘라에게 보내는 편지 
    이 장에서는 가브리엘에게 도움을 주고 친구가 되어 준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감사와 축복의 인사를 한다. 가톨릭레드리본지원센터 회장 로사 수녀가 가브리엘에게 보내는 편지가 뒤를 잇는다. 

    7장 가브리엘의 에이즈 묻고 답하기 
    에이즈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문답 형식으로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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