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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
    • 작성일
    • 2011.06.20
    • 조회수
    • 3694
  • 불평등한 젠더 이분법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적 쟁점들을 문제제기 하는 한편 그것을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잇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책. 성전환자를 둘러싼 사회, 문화, 역사, 제도적 담론들에 관심있는 활동가, 연구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은 쟁점들을 담은 책이다. 


    1.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는 어떤 책인가?


    2001년 3월, 하리수가 방송에 등장한 이후 “트랜스젠더”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트랜스젠더 하리수’라는 이름으로 각종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비롯한 많은 방송에 출연한 하리수는, 현재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각종 이슈와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이미지를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006년 6월 22일엔 트랜스젠더들의 삶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바로 트랜스젠더의 호적상의 성별을 변경을 허가한 내용이었다. 지방법원의 판례는 여럿 있었지만 대법원의 판례는 처음이었고, 이 판례로 트랜스젠더는 다시 한 번 한국에서 핫이슈로 떠올랐다.

    이쯤 되면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하리수는 유명하지만 하리수만 유명해서, 하리수는 알아도 트랜스젠더는 여전히 낯설다. 그래서 “트랜스젠더가 뭐지?”라는 반문을 쉽게 접하고, “하리수 있잖아.”라는 대답을 해야지만, 이해하겠다는, 알겠다는 반응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반응은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알았다는 의미일까?


    트랜스젠더는 모두가 하리수처럼 호르몬 투여와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일까? 모든 트랜스젠더는 하리수처럼 예쁜 사람들일까? 하리수를 봐선 트랜스여성이 있는 건 알겠는데, 그럼 트랜스남성도 있을까? 트랜스젠더들에겐 호적상의 성별변경만이 가장 시급한 문제일까? 그래서 호적상의 성별만 바꾸면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트랜스젠더는 1990년대 미국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나타난 존재들일까? 트랜스젠더들은 여성성을 혹은 남성성을 과잉으로 표현하기에 기존의 성별규범을 강화하는 존재들일까? 동성애자와 양성애자와 트랜스젠더는 어떻게 다른 걸까?

    얼핏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많은 질문이 가능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와 관련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은 없다. 하리수를 아는 것으로 트랜스젠더를 다 안 것처럼 생각했고, 대법원 판결 이후엔 호적상의 성별을 바꾸는 것이 트랜스젠더들에게 직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로 여겨졌다. 2001년 하리수의 등장 이후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얘기는 꽤나 익숙한 것 같지만,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논의는 전무한 상황이었다.


    2006년 초부터 준비해서 2006년 9월에 나온 [성전환자인권실태조사 자료집]은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조사한 ‘최초’의 연구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트랜스젠더의 생애, 삶의 질, 가족생활과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어려움 등을 얘기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았다. 이 연구 보고서의 목적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트랜스젠더는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다”, “트랜스젠더는 정말 불쌍하게 살고 있다”란 식의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고, 그래서 더 많은 얘기를 할 필요가 있었다.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퀴어이론문화연구모임 위그(WIG: Wander In Gender)는 성전환자인권실태조사 기획단에서 출발한다. 트랜스젠더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만연한 트랜스젠더의 이미지, 젠더이분법, 수술과 트랜스젠더의 관계,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의 구분 혹은 경계 논쟁 등, 실태조사 과정에서 발생한 고민을 좀 더 발전적으로 전개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런 고민을 함께 하는 이들이 모였고, 많은 토론과 각자의 고민을 나누며 서로의 글을 풀어갔다(한상희의 글은 별도로 청탁한 것이다). 그렇게 햇수로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논의를 처음 시작한 이후 3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니 이런 고민들이 낡았거나 유효성이 줄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책에서 던지고 있는 고민은 여전히 유효할 뿐 아니라 상당히 중요하다.


    이 책의 저자들이 (직접 얘기를 하건 간접적으로 얘기하건) 공통으로 지적하는 건, 이분법의 문제이다. “트랜스젠더들은 왜 그러느냐?”, “꼭 수술을 해야 하나?”,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는 어떻게 다르죠?”와 같은 질문들, ‘나’를 질문하기보다는 트랜스젠더들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목하는 방식들은 모두, 세상을 이분법으로 분명하게 나눌 수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저자들은, 바로 이런 구분이 성별이분법을 공고하게 유지하는 방식이며 트랜스젠더들을 둘러싼 오해와 오인은 이런 이분법에 기반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오인과 오해는, 남성과 여성을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얘기하며 성차를 본질적인 것으로 만들고 이에 따른 차별을 공고하게 유지하려는 권력의 작동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문제제기를 통해 트랜스젠더 이슈가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개개인들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이슈임을 상기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지 트랜스젠더가 궁금한 사람들에게만 의미 있을 책이 아니다. 젠더의 형성, 젠더간의 권력관계,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교차점, 정체성을 분명하게 구분하며 개인의 정체성을 단일하게 여기는 인식의 문제점 등에 관심 있는 이들 뿐 아니라, 이분법이 지닌 문제점을 고민하는 이들 역시 이 책은 상당히 유효할 것이다.



    2.『젠더의 채널을 돌려라』의 구성


    본 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책을 읽는 낯선 독자들을 배려하기 위하여 성전환자, 트랜스젠더와 트랜스섹슈얼, 부치와 팸 등의 용어를 설명하고 정리하였다. 용어‘정의’가 아니라 용어‘정리’한 이유는 각각의 용어를 완벽하고, 단일하게 정의하는 것을 피하고 그 용어들이 이 책에 사용되는 맥락과 지형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1장 “번호이동과 성전환 - 주민등록제도, 국민국가 그리고 트랜스/젠더”에서는 트랜스/젠더와 신분제도와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특히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국민국가가 젠더를 두 개로 통제하는 방식과 주민등록번호의 의미를 둘러싼 경합을 읽으려는 작업이다. 또한 트랜스젠더들의 호적상의 성별변경이 가지는 의미를 현 입법운동과 관련해서 모색한다.


    2장 “의학화의 과정 속에서의 성전환 욕망, 성전환수술, 성전환자”는 근대적 의미의 의학기술 발달이 성전환자의 정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 글이다. 성전환자들이 어떻게 근대의학담론가 결합되고 사회는 이를 어떻게 인식했으며 성전환자는 의료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자 했는지 신문기사를 주 텍스트로 삼아 분석했다. 


    3장 “성전환자가 자기 의미지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의 경합”에서는 한국 사회 내에서 성전환자의 이미지를 둘러싼 미디어, 전문가, 성전환자 간의 문제를 다룬다. 특히 성전환자가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은 젠더정체성을 유동적이고 진행형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한다. 


    4장 “젠더 위반과 정체성 : 부치와 성정환남성 간의 남성성을 둘러싼 긴장들”은 한국사회에서 “바지씨”에서 부치(레즈비언)와 성전환남성(트랜스젠더)으로 정체성이 분화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고 현재 둘 간의 경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긴장들에 주목한 글이다. 그 과정에서 남성성을 어떻게 인식각 관계맺을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5장 “다른세상 읽기 : 1960년대의 여장남자와 남장여인”은 현대적, 서구적인 정체성의 명명으로 성소수자가 설명되기 이전, 주로 1960년대의 경험을 신문기사를 통해 역사화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 젠더, 섹슈얼리티 구조의 지형의 변화를 가늠해보고 복잡한 정체성의 차이들이 위계화되지 않은 공간을 상상해보고자 한다. 


    6장 “범주와 명명, 그리고 곙계지대”는 트랜스젠더를 “수입품”으로 보거나 반대로 탈역사화, 본질화된 주장을 비판하면서 정체성의 명명, 정체성간의 경계의 문제를 다룬다. 특히 정체성의 서사와 경계를 세우려는 노력이 이분법적 젠더질서와 이성애중심주의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경계지대’,‘부재지대’를 정치화한다 


    7장 “성별전화의 법담론 비판”은 성별변경 기준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와 입법안을 통해서 생체권력의 작동양상을 드러내고자 하는 글이다. 이와함께 법담론이 대표하는 몸과 경험에서 제외된 존재에게 부여되는 법적 기준과 그것이 권력으로 행사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8장 “성전환자의 성별결정에 대한 국내외의 법적 기준과 그 흐름”에서는 성전환자의 성별변경에 대한 국내의 법적 기준이 생물학적 결정론을 강요하고 있음을 주요하게 비판한다. 또한 국가별 비교검토를 통해서 법적기준이 마련과 해석에 있어서 사회적인 맥락이 관련됨을 드러내고 국내 법적적용에서 의학담론에 의존하는 것을 벗어나 성전환자의 삶을 주목하도록 요청한다. 


    마지막으로 “대담 트랜스/젠더의 복잡 다단함”에서는 이 책의 필자들이 집필과정에서 책의 기획과 관련해 부족한 부분을 상쇄해보고자 마련되었으며 특히 트랜스젠더에 관련한 쟁점과 운동지형을 반영하고자 애썼다.



    3.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미리보기 : 본문 중에서


    1장. 번호이동과 성전환 - 루인


    호르몬을 비롯한 의료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네가 정말 네가 맞느냐?”는 부인과 의심의 경험을 얘기한다. 신용카드나 핸드폰멤버십카드를 신청할 때 혹은 전화통화를 통해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말하고 주민등록증 발급일을 말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다른 사람 것으로 말하지 마라.”, “고객님 신분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와 같은 말들이다. 이것은 목소리를 통해 성별이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신분증은 ‘나’의 무엇을 증명하는가? 호르몬 등으로 목소리가 변한 이후, 전화통화상으로 주민등록상의 신분을 밝혀야 하는 상황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밝히는 건 나를 증명하고 확인하는 상황이 아니라 간첩이나 범죄자임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p.37)


    이는 주민등록번화가 개인의 젠더 표현에 있어 얼마나 강력한 규율로 작동하는지를 드러낸다. 즉, 트랜스젠더들이 호적상의 성별변경을 신청하며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번째 숫자를 바꾸려는 행위는, 한국사회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얼마나 강력한 통제방식인지를 알려준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주민등록번호를 바꾸려 한다거나, 수술이나 호적상의 성별변경을 한 적이 없다는 듯이 사는 것을 기존의 체제에 편입하려는 것으로만 읽는다면 그러한 행위가 위치한 맥락을 놓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오히려 이런 행위들이 한국사회의 어떤 권력 작동을 드러내고 있는 지로 읽어낼 필요가 있다. (p.38)


    ftm과 mtf 커플의 경우, 아이를 가지고자 하는 바람이 있고 수술을 안 했다면, ftm/트랜스남성이 임신을 한다. 이 아이에게 자신을 낳은 사람이자 아버지는 ftm/트랜스남성이며, 어머니는 자신을 낳지 않은 mtf/트랜스여성이다. 이런 트랜스젠더의 맥락에서 정철의 시,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는 꽤나 정확한 내용이다. 그렇기에 “여성”은 “父”일 수 없고 “남성”은 “母”일 수 없으며, “父”는 영원히 “父”여야 하고 “母”는 영원히 “母”여야 한다는 선입견은 동성결혼금지와 동성애혐오일 뿐 아니라 주민등록번호가 그 사람을 절대적으로 지시한다는 둘뿐인 젠더 상상력의 효과이다. (p.43-44)


    2장. 의학화의 과정 속에서의 성전환 욕망, 성전환수술, 성전환자 - 한영희


    한국사회 내 성전환자의 등장은 성전환을 위한 의료적 기술을 고민하고, 찾아다녔던 성전환자들의 모습을 통해 이루어졌다. 의학적 실천으로 성전환이 가능하다는 사회적 담론이 확장될수록 수술을 희망하는 성전환들은 늘어날 수 있었을 것이고, 성전환수술을 받은 성전환자들은 성전환 담론을 더욱 더 확장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성전환수술이 한국사회 내에 정착하는 과정 속에서 성전환자들은 ‘여장’이나 ‘남장’을 통해 “흉내 내는” 병리적 주체가 아닌 구성 가능한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p.62)


    그래서 성기의 제거 및 형성(성형)은 신체의 다른 어떤 부위의 성형보다 사회적 금기와 맞닿아 있다. 성에 대한 사회적 금기와 터부는 성전환수술을 성형수술의 영역과 분리시키는 하나의 기제가 된다. 그리고 성전환수술에 대한 사회적 논쟁에 대응한 성전환자들의 전략 속에서 성전환수술은 성형수술과 구분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성전환자들은 성전환수술에 대한 낙인을 피하기 위해 성전환증에 대한 진단이 ‘질병’ 범주에 포함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성전환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출생 이후 지속되어온 어쩔 수 없는 육체적 ‘장애’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성전환수술은 여타 질병의 치료수단으로서의 수술과 차이가 있다. 성전환수술은 의사의 진단에 의해 처방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는 환자의 요구에 의해 실행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현재 질병으로 인정되고 있는 성전환증이 다른 질병들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p.73)


    1966년 미국 최초로 개설된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젠더클리닉센터는 2년 반 동안 성전환수술을 희망하는 신청자를 받았다. 이 기간에 2천여 명이 지원을 했고 이 가운데 24명만이 까다로운 조건 속에서 선별되었다. 당시 의학계의 고압적인 태도는 수많은 성전환 희망자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강요하면서 의학계의 기준에 조금이라도 순응하지 않으면 수술자격명단에서 제명할 것이라는 위협으로 나타났다.

    의료담론에서 끊임없이 성전환자를 다른 성정체성들과 구분하고 이를 통해 참된 성전환자를 ‘발굴’하는 것은 무분별은 성전환을 방지하고 성전환 이후 혹시나 있을 후회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예에서 보듯이, ‘참된’ 성전환자를 발굴하는 것은 까다로운 의학기준을 준수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일 뿐이었고 결과적으로 성전환자의 의식과 경험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다. 결국 수많은 성전환자들은 까다로운 의학계의 기준에 ‘적합할 만한’ 서사를 구사해야만 의료적 조치를 허락받을 수 있었고 성전환자의 성정체성 구성과 이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의료 권력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의료계가 내세운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다양한 자기경험과 역사는 성전환으로 이어질 수 없었고 성전환자의 성정체성은 일방향적 경험과 역사로 진술되고 획일화될 수밖에 없었다. (p.75)


    3장. 성전환자가 자기 이미지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의 경합 - 김준우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 속에서 성전환자들 개개인이 경험 속에서 전환을 이루고자 시도했던 노력과 실천, 고민들은 단지 육체의 외형이라는 한 요소로 모두 설명될 수 있다고 쉽사리 단정되어 버린다. 그리고 성전환자가 겪어왔던 일상 속의 고민들, 그 동안 주저하고 갈등하고 욕망하면서 만들어온 자신의 정체화과정, 그리고 수술을 받은 후에 새로운 몸으로 일상을 살며 경험하는 과정들은 무화되고 삭제되어버리고 만다. (p.97)


    따라서 ‘장르로서의 젠더’는 양가적인 것으로 재사유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이 당연한 것/본질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강제적인 규정이 되는 것을 문제시하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위계적 질서―남성/여성, 이성애/동성애, 비성전환자/성전환자 등―를 깨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겠지만, 젠더정체성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만 간주하지 않은 채 젠더정체성에 대해 재사유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고민해야 할 것은 ‘섹스/젠더를 없애자’가 아니라 ‘섹스/젠더가 어떠해야 하는가, 지금의 것이 문제라면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가’일 것이다. 그리고 섹스/젠더를 재사유한다는 것의 출발점은 ‘여성/남성’ 둘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관계를 재고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그 방식은 ‘둘이 아닌 셋, 넷 등등’을 새로이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고, ‘둘이자 하나’인 형태로 그 관계를 재구성하는 방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섹스/젠더를 재사유함으로써 섹스/젠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지 않고선, 성전환자의 이미지는 여전히 ‘남성이냐 여성이냐’ 중 하나만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상황 자체가 문제적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둘 중 하나’라는 선택지로는 성전환자의 재현은 불가능하고 이미지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p.105-106)


    물론 많은 성전환자들이 자신을 설명할 때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때로는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젠더 역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비판의 화살이 성전환자 개개인에게로 향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 당신들은 남자/여자처럼 되는 것에 그렇게 집착하느냐?” 혹은 “왜 반대쪽 성을 선망하고 그렇게 모방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은 묻는 방법의 출발점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질문은 이미 만연되어 있는 성전환자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질문하는 방식, 즉 성전환자들이 나는 비정상적인가로 ‘갈등하는 게 정상적’이라는 모순을 강요하는 현 상태를 교묘하게 정당화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질문을 하기 전에 “왜 젠더 체계는 남성 아니면 여성 중 하나이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하고 “어째서 누군가에게서 둘 중 하나의 젠더에 적합하지 않는 부분―그것이 신체 기관이든 외형적 스타일이든,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이든, 사고방식이든, 행동패턴이든을 막론하고―이 있으면 한쪽으로 통일시켜주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일까?”를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이 문제적인 것으로 비판하고 있는 지점, 이분법적 젠더 규범에 사로잡혀서 성전환자를 판단하려 하고 그에 따라 성전환자의 왜곡된 이미지를 만드는 바로 그 지점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4장. 젠더 위반과 정체성 - 나영정


    남성의 권력이 남성의 몸에, 특히 페니스에 기인한다는 인식은 남성으로의 이행을 여성을 배신하는 행위로 의미화한다. 페미니스트는 의료행위에서 여성의 결정권을 주장하지만 성전환수술은 자신을 잃는 것이라고까지 한다. 그러나 몸을 행위하기 이전에 이미 특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 기존의 이분법과 다른 실천이 가지는 의미에 주목하지 않는 것은 기존의 질서를 바꾸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시각은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몸-이미지, 몸을 의미화하는 방식과 갈등을 일으키며 트랜스젠더와 페미니스트, 레즈비언 간의 긴장을 생산한다. (p.157)


    그러나 현실에서는 성전환남성을 몸에 기반한 남성성을 지니지 않은 존재, 섹스/젠더 범주에 대해 비전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시각은 성전환남성을 “타자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흡수할 뿐만 아니라 억제하는 장치(헤일, 2004)”로 만들면서 결국 트랜스젠더와 비트랜스젠더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성전환남성은 모든 남성과 마찬가지로 체계적 구조의 압력에 의해 강화되고 폭력을 통해 유지되는 일상의 문화적 · 경제적 · 정치적 권력의 지속적인 유혹에 직면해 있고, ‘진짜 남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권력의 불공정함에 대한 갈등 사이에서 끊임없이 협상의 과정을 겪는다. 한편 남성성이 특정하게 구성되고 유지되는 측면은 비성전환남성에게도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진짜 남성’으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짜 남성’이 되기 위해 투쟁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젠더화된 질서를 자각하도록 만든다(루빈 2004). 성전환남성은 ‘이행’의 과정을 통해서 주체화하고 남성되기를 통해서 사회적인 인정을 획득하고자 하지만, 지난한 ‘이행’의 과정에서 관계나 신분을 속이거나 ‘포기’하면서 젠더화된 질서 속에서 고통을 경험한다. 동시에 자신의 ‘이행하는 과정중의 몸’을 인정받는 관계를 맺고, 쾌락을 경험하며 살만한 조건을 만들어내면서 지배적인 섹스/젠더 구조나 남성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기도 한다. (p.163-164)


    5장. 다른 세상 읽기 - 김일란


    여성성은 여성의 육체로부터, 남성성은 남성의 육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비규범적인 젠더를 수행함으로써 남장여자 혹은 여장남자들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특정한 육체에 귀속된 특질이 아님을 전시했다. 또한 동성 욕망 역시 여성의 것인지 혹은 남성의 것인지에 따라 사회적 수용의 범위와 강도에서 차이가 발생한다는 사실 역시 발견했다. 더불어 여장남자와 남장여자에 대한 서술에 있어 그 태도가 달라지는 것은 젠더 이분법에 준거한 이성애 규범 속에서 여성과 남성 혹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불균형적인 위치 때문이란 점 역시 확인했다. (p.196)


    6장. 범주와 명명, 그리고 경계지대 - 루인


    많은 수의 트랜스젠더들이 비정규직이고 “이성애자”가 있는가 하면 “동성애자”도 있고, 출신지역, 종교, 학력이나 학벌 등에 따라 다양한 삶의 결들을 동시에 경험한다. 이런 결들은 나의 경험을 구성하는 데 전혀 무관한 내용일 수 있는가. 나는 나의 하루 24시간을 오직 트랜스라는 정체성으로만 경험하고 있을 뿐인가. 트랜스는 다른 맥락 없이 트랜스일 뿐인가. 개인을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단일 정체성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일종의 특권이다. (p.241)


    우리는 “불명확”하거나 “부재지역”에 거주하는 거이 아니라 부재한다고 간주되는 지역에 위치화고 있으며 “불명확이 명확”인 지역에 살고 있다. 게이냐 크로스드레서냐 mtf냐란 질문을 통해선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지만, 그런 ‘존재할 수 없음’, ‘존재하지만-부재-중임’이라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트랜스젠더는 이러이러하다, 라는 서사구조와 그런 연구보고서는 결국 트랜스젠더를 특정한 틀 속에 구겨 넣고 그리하여 오직 그것만이 “진성트랜스젠더”의 서사라고 얘기할 위험성에 빠지기 쉽다. 이럴 때 이러한 서사에서 벗어난 경험과 몸의 부분들은 모두 예외나 가짜가 되고 “진짜”가 되기 위해 노력하길 요구받는다. 범주, 명명, 경계설정은 언제나 이런 위험 속에 있고 mtf/트랜스여성, 크로스드레서, 게이의 범주는 언제나 “모호”한 상태에 걸쳐 있다. 이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려는 욕망, 그것이 존재를 부재로 만들고, 괴물을 “괴물”로 만든다. (p.244)


    7장. 성별전환의 법담론 비판 - 한상희


    대체로 성전환자에 대한 성별변경의 문제는 두 가지 법익이 충돌할 우려를 안고 있다. 즉, 당사자의 성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행복추구권의 문제와 그 당사자를 중심으로 그동안 형성되어 온 사회적 법질서의 문제가 경우에 따라 충돌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별변경의 문제는 그 본질에 있어 신분공시제도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만큼 대법원의 입장에서는 후자-거래질서의 안정의 법익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이 지침은 거래의 안정이라는 요청의 수준을 지나치게 상회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한 과중한 부담으로 인해 성전환자의 기본권 자체에 대한 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p.267)



    4. 목차 소개

    용어설명


    1부 성전환

    1장 번호이동과 성전환: 주민등록제도, 국민국가, 그리고 트랜스/젠더 - 루인

    2장 의학화의 과정 속에서의 성전환 욕망, 성전환수술, 성전환자 - 한영희

    3장 성전환자가 자기이미지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의 경합 - 김준우

     

    2부 젠더 위반

    4장 젠더 위반과 정체성: 부치와 성전환남성 간의 남성성을 둘러싼 긴장들 - 나영정

    5장 다른 세상 읽기: 1960년대의 여장남자와 남장여인 - 김일란

    6장 범주와 명명, 그리고 경계지대 - 루인


    3부 법

    7장 성별전환의 법담론 비판 - 한상희

    8장 성전환자의 성별결정에 대한 국내외의 법적 기준과 그 흐름 - 이현  


    대담: 트랜스/젠더의 복잡다단함

    5. 저자 소개


    루인 | runtoruin@gmail.com

    몸-기술, 신체변형, 트랜스/젠더와 트랜스/젠더화된 사왕, 채식 혹은 음식과 젠더정체성의 관계 등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고민들 속에서 다양한 맥락에 있는 사람들과 함게 하는 공간을 ks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위그에 합류했다. 덧붙이면, 2008년 2월에 단체이름을 ‘tdwjsghkswkdlsrnjsdus대 지렁이’에서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로 바꿨다.


    한영희 | passioni93@naver.com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고, 수년째 연분홍치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성전환자의 인권문제에 뛰어들어, 성전환과 이분법적 젠더사회에 대해서는 아직 초보적인 문제의식만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몸의 구성과 정체성, 근대성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려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김준우 | jak13@lycos.co.kr

    여성학을 전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젠더 이분법과 남성성/여성성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지, 몸과 정체성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나영정 | taripink@gmail.com

    철학가 여성학을 전공했다. 이성애/젠더 규범이 위력 속에서 창조적인 위반을 어떻게 생산하고 의미화할 것인가, 또 그러한 실천이 조 더 살만한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전가 다른 주체화를 모색하면서 성적시민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김일란 | lemonson@naver.com

    페미니즘, 영화학 그리고 퀴어 이론을 일상 속에서 점잖지 않게(?) 실천하려고 노력중이다. 1960년대 신문기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견고한 젠더 규범과 이를 윟반했던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 흥에 겨워 자유롭게 상상했었는데, 막상 글로 쓰니 괜한 일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상상으로 인해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부디 누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 활동가이다. 


    한상희 | shan@konkuk.ac.kr

    건국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권의 실천을 염두에 두며 헌법과 법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 현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으로 사법개혁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인권재단 사람 이사, 경찰혁신위원 등을 겸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미 FTA상의 투자자국가제소제>, <성매매방지법과 여성인권>,<변호사정적수> 등이 있다. 


    이현 | ayvedeniz@daum.net

    성전환자성별변경관련법제정을위한공동연대 활동가. 젠더, 퀴어라는 단어에 마음을 향하고 있지만 몸은 법학에서 살고 있다. 법학을 하면서는 사실 젠더를 한다고 하고 젠더에서는 법학을 하고 있다는 말로 자신이 무능함에 대해 변명하지만, 그래도 두 개 다 놓치고 싶지는 않은가보다. 젠더/퀴어의 관점에서 법담론과 법체계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해 법과 사회이 변혁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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