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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프로젝트-온] 오키나와 평화기행 및 동아시아 국제 심포지엄
    • 작성일
    • 2017.02.15
  • “바다를 넘어 손을 잡자! 평화는 무기로 만들 수 없다!” 
    - 오키나와 평화기행 참가 및 동아시아 국제 심포지엄 개최 사업 보고- 


    글 / 기지평화네트워크


    지난 5월 11일부터 15일까지 일본 오키나와의 주일미군 기지 현황과 문제점을 공유하는 평화기행과 올해로 9번째를 맡는 동아시아 미군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올해 행사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이에 대응하는 한미일과 유엔안보리 등의 강력한 대북제제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일본 아베정부의 군사력 확장이 본격화하면서 동아시아의 평화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진행되어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기지평화네트워크참가자와 제주·강정참가자까지 모두 26명의 한국참가단이 이번 평화기행에 함께 했으며 매년 5월이면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평화대행진에 참가하였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중요한 현안인 헤노코 신 미군기지 건설 현장을 찾아 현지의 상황을 공유하고 연대하였으며, 오키나와 북부 다카에지역의 신 기지 건설현장에도 연대의 발걸음을 이어갔습니다. 그 외 오키나와 평화기념관 방문을 통해 주일미군의 최대 주둔지인 오키나와의 아픈 역사를 접할 기회를 갖기도 하였습니다. 5일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본과 한국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한 군사기지의 확장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문제를 풀기 위한 한일 민중간의 소중한 연대로 채워진 시간이었습니다.

    이 보고는 2016년에 기지평화네트워크가 진행한 오키나와 평화기행 및 국제심포지엄 사업에 관한 간략한 기록입니다. 경험하고 배운 것에 비해 지극히 제한적이지만 좀 더 많은 한국의 평화단체와 활동가들이 내용을 공유하고 좀 더 폭넓고 깊은 한일 민중연대의 시도들이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 오키나와 평화기행

    <5월 11일> - 첫째날 

    #1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

    평화기념공원은 오키나와전쟁 당시 희생된 수십만명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남부 마부니[摩文仁]언덕에 조성한 공원이다. 부채꼴 모양으로 생긴 공원에는 20만 명의 희생자의 이름를 새겨 넣은 검은색 위령비가 줄지어 세워져 있다. 이것을 ‘평화의 초석’이라고 부르는데, 일본의 만주침략 때부터 오키나와전투 때까지 이곳에서 숨진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이곳으로 끌려와 사망한 한국 국적의 조선인 231명과 북한 국적의 조선인 82명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공원의 한켠에는 이들을 기리는 둥근 돌무덤으로 된 위령비가 있다.

    2차대전 막바지였던 1945년 4월 1일, 20여만명의 미군이 오키나와 가데나만에 상륙하면서 거대한 전투가 벌어졌다. 6월 23일까지 83일간 이어진 전투에서 미군 4만여명 일본군 10만여명 그리고 12만여명의 오키나와 주민이 사망했다. (일본정부 추산) 이 전투에서 일본 제국군은 군인, 사령관뿐만 아니라 그곳 주민들에게도 할복 자결을 명령했다. 4km 정도 길이의 ‘기자 반타(반타는 오키나와 말로 절벽)’에 동굴들이 많다. 오키나와 전쟁 당시 미국 함선으로 가득 찼던 바다. 동굴 안에 있던 오키나와 사람들은 도망갈 데가 없었고 미군에게 잡히면 (그 당시 일본 군인들은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만나본적 없던 미군들을 도깨비, 괴물로 설명) 안됐다. 절벽에서 뛰어내려 집단자결 했다. 아니 정확히는 집단자결 당했다. 나오면 살려주겠다는 미군의 방송을 듣고 나온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군이 죽였다. 이같은 집단자결은 80년대 중후반 부터 이야기되기 시작 했다. 이는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 내 조선인희생자의 돌무덤과 위령비 /
    평화의 초석, 왼편으로 조선인 희생자들의 명단이 새겨진 비석이 보인다

    <5월 12일> - 둘째날 

    # 헤노코 미군기지 확장 예정지

    일본 오키나와현[沖繩縣] 북부 나고시[名護市]에 있는 작은 어촌마을. 1,500여명의 어민과 일본의 천연기념물 듀공이 어울려 살던 평화롭던 마을이 투쟁의 현장이 된 것은 1996년 9월 미일정부의 ‘오키나와에 관한 특별위원회(SACO)’가 기노만[宜野灣]에 있던 후텐마 공군기지를 이전해 헤노코 앞바다에 건설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다. 사업결정 직후부터 헤노코지역의 주민들은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했고, 일본의 평화단체들도 함께하기 시작했다. 작은 천막 하나로 시작된 농성장은 천막촌이 되었다. 태풍이 오면 쓰러지지만 다시 천막을 치고 또 치고 그렇게 싸움은 계속된다. 경비용역들로 막힌 공사장 입구에는 사람들이 연좌하지 못하도록 철제 바리케이트를 설치해놓았다. 헤노코에서나 강정에서나 저들의 대응수준은 유사하다. 미국과 아베정부는 후텐마기지의 이전일 뿐이라 주장하지만, 후텐마공군기지에는 없던 탄약창들이 추가로 건설되고 있다. 이전이 아닌 확장이라는 의미다. 기지 주변에서 매일 열리는 집회. 발언하는 분들의 목소리에서 에너지가 느껴진다.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 현장 앞의 농성장과 농성천막 텐트 안에서 상황 설명을 하는 현지 활동가


    공사장 인근에서 매일 열리는 집회, 한국참가단도 연대발언으로 함께 하였다

    # 가데나 미 공군기지

    미 태평양사령부 소속 최대규모의 해외주둔 미 공군기지.
    한국의 오산 미공군기지와 함께 미7공군사령부의 예하 제18비행단부대가 주둔한다. 후텐마 및 화이트비치와 함께 유사시 한국에 있는 유엔사령부의 지휘를 받는 미군의 주둔기지이기도 하다. 일반 도로 양쪽으로 이어지는 기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오키나와 내 가장 큰 소음피해지역이며 매주 금요일 항의집회가 이루어진다.



    # 후텐마 미 공군기지

    오키나와 기노완시의 한 가운데 위치한 미군기지. 비행장 면적은 총 4.8㎢ 정도로 기노완시 전체 면적(19.5㎢)의 약 25%에 달한다. 1945년 4월 오키나와 전쟁 당시 20여만명의 미군이 진주했다. 당시 1만여명의 주민이 거주하던 기노완에 진주한 미군은 주민들을 수용소에 감금한 채 활주로건설을 시작했다. 3~4개월 후 집으로 돌아온 주민들은 자신의 삶터가 군가기지로 된 사실을 알게된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주민들은 기지 주변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후텐마기지를 주변으로 빼곡이 주민들의 거주지가 형성된 이유다. 활주로 주변 거주지에서는 추락 등 잦은 사고가 일어났고 미 국방장관이던 럼스렐드조차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군기지라 표현했다. 악명 높은 오스프리의 배치기지이기도 하다. 토지수용에 거부한 주민들은 10년간의 투쟁 끝에 후텐마기지의 일부를 반환받았다. 그 곳에 지어진 사키마미술관, 오키나와 전쟁의 참상과 전쟁피해자들의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다. 후텐마기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옆에는 “청구지탑’라는 비가 서 있다. 오키나와전쟁 당시 죽은 한국인 징용병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후텐마비행장에 대한 설명을 하는 오키나와민중연대 다카하시선생 / 기노완시 모습, 후텐마 미공군기지가 도시의 정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인 징용병들의 죽음을 기리는 청구지탑


    # 515 평화대행진 결단식

    오후 3시, 나하시내의 パレシト市民(시민)劇場(극장)에서 열린 제39회 515평화대행진 결단식. 오키나와와 일본 본토에서 온 참가단의 대표들이 인사와 결의를 밝힌다. 한국참가단은 강미단장(평택평화센터)이 힘찬 연대의 연설로 화답


    한국참가단을 대표한 강미단장의 연대사

    # 한국참가단 환영식

    저녁, 다시 숙소인 기노완시의 쿠부무장. 커다란 불판에서 오키나와 민중연대 분들이 준비한 고기가 구워지고, 오키나와 소주인 아오모리가 돌려진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기 소개를 하고 오키나와에 온 소감과 의지를 말한다. 헤노코 농성장을 지키는 ‘오키나와 지킴이’가 강정에서 받은 영감 때문에 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거대한 군사주의에 맞서는 작지만 소중한 한일 민중들의 연대가 오늘 오키나와의 밤에 다시 한 줄 새겨진다.


    <5월 13일> - 셋째날 

    #515 평화대행진 출정식 -헤노코-

    오전 10시, 다시 헤노코 신기지 건설 반대 농성장. 515 오키나와 평화대행진의 사전행사 격인 출정식과 기노완시까지의 행진이 진행되었다. 한국참가단의 연대발언은 김용한대표 (전 우리땅되찾기평택시민모임)가 맡았다. 김용한대표는 헤노코싸움이 시작된 1996년부터 20년 동안 오키나와와 연대를 이어 온 한일 민중연대의 산 증인이기도하다. “이길 수 있다고 해서 왔다. 끝까지 연대해서 마침내 이기겠다”는 한국측 참가단의 외침이 헤노코의 하늘에 울려퍼졌다.


    515 평화대행진 출정식에서 한국참가단을 대표해 발언하는 김용한 전 우리땅되찾기평택시민모임 대표 /
    출정식에 참가한 한국참가단


    기노완시까지의 행진, 행진 선두에 선 한국참가단 / 행진을 마치고 함께

    # 다카에 군사훈련장’ (7800헥타. 나하시의 2배 규모)

    오키나와 본 섬 북부에 펼쳐진 얀바루(山原)는 풍요로운 숲에 둘러싸인 지역이다. 얀바루 안에 히가시촌(村)이 있고, 그 북쪽 외곽에 인구 약 150명이 거주하는 다카에 지구가 있다. 1995년, 주일미군병사의 12살 소녀에 대한 성폭행사건으로 촉발된 미군기지 반환 운동. 당시 미국은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후텐마 미공군기지와 나하군항 그리고 다카에훈련장 일부를 반환하기로 한다. 하지만, 미국은 다카에훈련장의 22개 헬리패드 중 7개를 반환하는 대신 6개의 대체지를 요구한다. 다카에 주민들에 대한 설명회조차 없이 사업은 강행되었고 현재 2개의 헬기장이 건설된 상태. 주목할만한 점은 새로 건설된 헬기장의 규모가 기존의 것의 2배에 이른다는 점이다. 이유는 문제의 오스프리 이착륙장으로도 이용하기 위해서. 다카에 헬리패드 건설사업이 단순히 대체지 마련이 아니라 새로운 군사기지 건설로 판단되는 이유다.

    문제는 더 있다.
    다카에지역은 오키나와 현민들이 사용하는 식수의 70% 이상이 공급되는 식수원. 국민들의 식수원에 어떤 오염이 진행될지 확인할 수도 없는 군사기지가 들어선다는 것이 놀랍다. 이 같은 사업이 강행되는 이유에 대해 다카에주민들은 오스프리 제작에 연관된 4000여개의 미 군수산업체들의 존재를 말한다. 실제 일본정부는 최근 17대의 오스프리를 추가로 구매하기로 결정했고 미 국방부와 의회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대당 가격은 203억엔이며 총 도입액은 3800억엔, 한국돈으로 4조원에 달한다.

    ‘오스프리’
    이착륙시 분출되는 고온의 화염은 300도에 달해 이착륙장 주변의 생물을 고사시키고 잦은 화재를 유발한다. 높은 풍압은 인근 주택가의 지붕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잦은 추락사고로 미망인 제조기로도 불리는 미국의 최신예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


    다카에 훈련장 확장 현황과 문제점을 설명하는 현지 활동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
    그림처럼 아름다운 오키나와의 석양과 만났다. 아름다운 곳은 늘 슬픔을 간직하는가. 아름다운 해변과 산호초, 듀공을 품은 헤노코. 원시림 같은 숲속에 자리한 다카에마을. 구럼비를 담았던 강정과 붉은 노을 속에 젖어가던 황새울의 대추리와 닮았다. 어찌보면 우리의 투쟁은 아름다운 것들을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일수도 있다.



    <5월 14일> -넷째날-

    # 제9회 동아시아 미군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

    오키나와 평화기행 일정 중 유일한 실내일정. ‘제9회 동아시아 미군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예정된 날이다. 이 심포지엄을 위해 한국의 기지평화네트워크와 오키나와 민중연대는 지난 몇 달간 주제와 내용에 대한 협의를 진행해왔다. 주된 주제는 ‘전쟁의 위기’.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촉발된 한반도의 정세와 아베정부 이후 심화되어가는 일본의 군사력 확장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전쟁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공감에 따른 주제 선정이다. 한국, 오키나와, 일본 본토의 발표자들이 진행한 심포지엄의 대략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심포지엄 자료집을 참고해주시길.




    ‘제9회 동아시아 미군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
    -바다를 넘어 손을 잡자. 무력으로 평화를 이룰 수 없다-
    (5/14 10:00~16:00 , 오키나와 현립박물관 대강당)


     <제1주제> -전쟁의 위기-
    · 일본측 발표 (사토 미나부 / 오키나와국제대학 교수)
    - 아시아, 중동, 유럽 등 전 세계에서 군사적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하려는 흐름. 그 원인은 급속히 둔화되는 경제성장과 사회 내 불평등의 심화로 인해 위기에 몰린 부정한 정치권력이 외부의 적을 설정해 돌파하려는 의도 때문.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 유일한 방법
    · 한국측 발표 (박석진 /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활동가)
    -새로운 전쟁위기의 원인 ‘한일 군사협력’, 한일 평화민중연대의 필요성과 과제-
    한미동맹의 대북 고립압박정책과 이에 대한 북한의 핵능력 강화를 통한 대응이 한반도의 기본적인 전쟁위기의 구조. 최근 삼화되고 있는 한일 군사협력은 또 하나의 전쟁위기 요소. 아베정부 이후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군사력 확장과 더불어 한반도 북한 지역에 대한 일본 자위대의 독자적 군사력 전개 가능성. 한일 군사협력을 추동하는 미국의 의도는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을 구축하기 위한 것.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은 중러의 군사블럭을 형성시키며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냉전을 형성시킬 것. 이는 전쟁위기 구조의 심화를 초래할 것. 한일 민중의 평화를 위한 연대는 전쟁위기구조를 허물고 공존과 평화를 위한 시작이 될 것.

    <제2주제> -군사기지-
    · 일본측 발표 (기모노 시게오)
    - 안보법제와 자위대, 가나가와기지는 어떻게 되어가는가-
    · 한국측 발표 (강미 / 평택평화센터)
    - 한국 미군기지를 둘러싼 쟁점 <주한미군 탄저균 반입실험사건/한반도 사드배치 문제/반환미군기지 오염문제/한미전쟁훈련과 대응)
    * 한국측 특별발표 (김태정 / 두레방)
    - 미군기지와 기지촌 그리고 두레방-

    <제3주제> -평화를 위한 투쟁보고-
    . 일본측 발표 1 (오완 무네노리 / 미군 X밴드레이더 반대 긴키교토연락회)
    - 미군 X밴드레이더 반대 투쟁 경위
    . 일본측 발표 2 (아라카키 토쿠쇼 / 오키나와현 나카구수쿠촌 의회의원)
    - 올 오키나와로 해노코 신기지 건설을 저지한다
    . 한국측 발표 (최혜영 / 강정지킴이)
    - 제주 강정 현장투쟁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다’ -
    <제9회 동아시아 미군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 선언문>


    ‘바다를 넘어 평화의 손을 잡자’
    일본 복귀 44년째 오키나와. 올해도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428, 515, 623, 813, 1995…

    일본의 역사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은 많은 날들을 오키나와는 기억해왔습니다.
    이 역사를 기억하는 뜻을 이해하고, 괴로울 때 용기를 준 사람은 누구였는지 생각해봤을때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손을 내밀어주고 지혜를 준 사람은 닮은 아픔을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의지와 삶의 뜻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연대라는 것을. 그래서 우린 소리칩니다. “바다를 넘어 손을 잡자”고.

    우리는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음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자연과 맑은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인생을 선물하기 위해 투쟁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아이들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아이들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연인이 오늘 혹시 이해해주지 않아도 내일 다시 이야기해봅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빨갱이, 매국노 등 욕을 들어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정치의 빈곤, 사회의 빈곤으로 병든 마음이 사람의 상상력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처를 받고 그 치유를 기다리는 약한자가 아닙니다. 아픔을 극복하고 잘 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섬에 갖혀버린 죄인처럼 사는게 아니라 평화의 개척자로서 바다를 넘어갑니다.

    2016년 5월 14일
    2016, 오키나와-한국 평화교류 실행위원회



    심포지엄을 마치고 다함께

    # 한국-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심포지엄 후 나하시내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한국-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오키나와 민중연대 분들이 준비한 소박한 공연과 정갈한 음식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압권은 우리로 말하면 오키나와 민중가수분의 선창으로 합창이 된 님을위한행진곡과 아침이슬. 모두 손을 잡고 어깨를 걸고 하나가 된다. ‘ALL OKINAWA’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구호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다.



    <5월 15일> -다섯번째날-

    # 515 평화대행진

    오키나와 5.15 평화행진 2박 3일 일정 중 마지막 날, 오전에 행진에 참여하였다. 한산한 시골길을 걸었던 첫날과 달리 도심을 걷는 동안 지나가는 차량과 건 물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오키나와 주민들을 보았다. 오키나와 현립박물관 옆 공원에서 행진을 마무리하 며 열린 집회, ‘복귀 44년 5.15 평화와 삶을 지키는 현 민대회’에서 한국 참가자를 대표하여 강정마을 강문 신 부녀회장이 발언하였고, 참가자들이 현수막을 들 고 자리를 함께 하였다.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해야 할 자연을 남겨줄 수 있도록 오키나와와 연대해, 함께 싸워나갈 것”이라는 강문신 부녀회장의 발언에 이어 “함께 걷자, 함께 외치자, 오키나와의 평화, 강정의 평 화”라는 구호를 함께 외쳤다. 


    나하시내로 들어오는 행진단 / 행진에 함께하는 한국참가단 / 오키나와 현민대회에 참석한 한국참가단


    <글을 마치며> 

    ‘2016 오키나와 평화기행’
    5박 6일간의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빼곡한 기억으로 가득찬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들에 채워진 것은,
    고통스러운 오키나와 민중들의 역사. 그럼에도 딛고 일어서는 그들의 평화를 위한 투쟁. 그리고 그들의 삶.

    그것들은 우리의 시간들과 많이 닮아있었습니다.
    매향리에서 대추리에서 그리고 강정에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우리의 싸움의 시간들.

    우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그 기억들은 각자의 가슴 속에 한 줄, 한 줄 깊게 새겨졌습니다.

    그것은
    서로 다르지 않은 고통에 대한 공감의 기억이며,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한 투쟁의 기억이며, 잡은 손 놓치 않을 한일 민중간의 연대의 기억입니다.
    오키나와 평화대행진 기간동안 많은 집회와 행진에서 수 없이 불려졌던 노래.
    ‘沖?(おきなわ)を 返(かえ)せ’ (오키나와를 돌려줘) 

    민중들의 것을 민중에게 되돌리는 날까지 투쟁은 그리고 연대는 계속될 것입니다.

    다시 만나는 날, 함께 손잡고 힘찬 노래를 부를것입니다.


    헤노코농성장에 남겨진 연대의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