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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쉬고] 너와 나 그리고 그곳을 알아가는 시간
    • 작성일
    • 2020.05.26
  • 너와 나 그리고 그곳을 알아가는 시간




    글 | 지나 (인권교육센터 '들')


    2020년 나는 들의 새내기 상임활동가이다.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코로나19로 대부분의 교육이 취소되면서 7명의 상임활동가들의 발목이 사무실에 묶였다. 3월에 이어 4월까지 연달아 교육이 취소되면서 대책회의에 나섰다. 그 중 하나는 이참에 쉼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

    쉼프로젝트에 일단, 쉬고!’를 신청했고 감사하게도 들이 선정되었다. 상임활동을 시작하자마자 불어닥친 재정의 가뭄 속에 단비가 내린 것이다.

     

    나는 여행의 경험이 많지 않다.

    그리고 사실 여행이 마냥 설렌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콩쥐가 파티장에 가려면 구멍난 항아리에 물을 채워야했던 것처럼 나 또한 여행을 가려면 해놔야 하는 집안일이 더 많았기에 차라리 포기하는 편이 마음편했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졌으니 전날밤 늦게까지 부랴부랴 항아리에 물을 채워 놓고 떠날 채비를 했다. 이번 여행은 들의 상임활동을 시작하고 첫 여행이다.

    이 여행을 통해 동지들과 더욱 친밀해지기를 기대하며^^ 동지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자세히 알아가리라!!

    드디어 제주에 도착했다.

    바람이 몹시 불었지만 헝클어진 머리를 부지런히 정돈해가며 제주의 바다, 하늘, 꽃들...

    수많은 제주도의 풍광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첫날 방문한 곳은 서려니숲! 길 양쪽으로 끝도 없이 울창한 대나무숲이 펼쳐졌다.

    양쪽으로 숲은 깊었고 길가의 대나무숲은 너무 높았다.

    동지들은 너무나 아름답다며 탄성을 쏟아냈다. 그러나 나는 사실 무서웠다.

    내 기억 속 숲은 TV에서 살인사건의 장소(?)로 종종 등장했고 멧돼지나 뱀을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던 곳이다. 혼자라면 절대 오지 않았을 곳이다.

    숲에 깔린 보행매트를 걷는데 마치 괴물의 등처럼 느껴졌다. “누가 내 등을 밟았어!”하고 이름 모를 큰 동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으악! 차라리 뛰자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쿵쾅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숲의 중간까지 왔을 때다. 동지들과 함께여서 그랬을까? 샛노랗고 작은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새소리도 귀에 들렸다. 들어보지 못한 새소리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궁금했다. 새소리를 따라할 수 있다면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신비함은 잠시뿐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면서 다리가 아팠다.

    대나무숲이 대체 언제 끝나냐며 투덜거리자 동지들이 말했다.

    대나무가 어디있어? 삼나무지!” 숲의 경험이 없고 관심이 없는 나에게 삼나무인지 대나무인지가 무엇이 중요한가! 내게 있어 길다란 나무는 모두 대나무인 것을...

    내 인생 첫 10km였다. 내게는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내 인생의 삼나무와 대나무의 다른 의미를 만나고 싶다. 온몸이 쑤셨다. 그날밤 나는 대나무처럼 뻗었다.




    둘쨋날, 오전 일정은 거문오름이란다. 죽었다... 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1코스만 갈 수 있단다. ~ 살았다ㅎㅎ 그러나 거문오름의 1코스도 만만치 않았다. 계단이 세상... 끝도 없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동지들은 강철체력의 소유자! 이 정도 코스는 누워서 떡먹기이지만 저질체력의 나를 위해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해가며 내가 함께 완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함께한 동지가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못 걷는 것이 아니라 못 걷는다고 생각 하는거라고. 생각해보니 다리가 아파 멈춘적이 있긴 했지만 못 걸을때까지 걸어본적은 없었다.

    어쩌면 내가 정말 못 걷는다고 선택했는지 모른다.

    혹시, 내가 정말 가장 잘 걷는 아니, 잘 뛸 수 있는 사람은 아닐까? 문득 궁금하다.

    오전일정을 예상보다 일찍 끝내고 여유시간이 생겨 카페팀과 오름팀으로 나누었다.

    그가 오름팀에 있어야 할 동지가 카페팀을 선택했다. 그동안 힘든 내색한번 없더니...

    사실 그는 저질체력과 강철체력의 어느쪽에 가까웠을까?

    그날 밤 우린 대나무숲에 대고 비밀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동안 어찌 숨겨왔을까...)


     

    셋째날, 제주다크투어를 했다. 가윤활동가와 함께 알뜨르비행장에서 섯알오름을 지나 고사포진지까지, 올레 10코스를 함께 걸었다. 동광마을회관으로 이동하여 4.3 당시 11살이었던 홍춘호할머니를 만나 무등이왓 마을을 돌아보며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무등이왓 마을 입구에서 진짜 대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대나무로 바구니도 만들고 조리개도 만들고 모든 도구들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집집마다 대나무들이 담장이 되어 둘러쌓여 있었는데 총을 든 사람들이 오면 35살 동생들과 함께 대나무 사이에 숨어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대나무 숲에 숨어서 목숨의 반은 창에 찔려 죽고 남은 반은 불에 타서 죽어야 했던 사람들을 지켜봐야 했다.

    삶의 터전이었던 대나무 사이에서 왜 그런 끔찍한 일을 겪어야 했을까...

    50일간은 큰넓궤에 숨어지내셨고 발각된 이후에도 할머니는 다른사람의 아이를 돌봐야하는 형벌을 사셨다. 옷도 못 갈아입고 씻지도 못 하다가 몇달만에 주인집에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차마 볼 수 없는 거지꼴이었다고 하셨다. 아파도 아프다는 말은커녕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던 7년간 생활은 그 어떤 존엄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는 할머니는 생존과 존엄함을 되찾기 위해 끝까지 견디고 견디셨을 것이다. 할머니가 숨어지냈다던 큰넓궤에 들어가 보았다.

    진흙같이 어두웠던 곳에서 숨죽여 목숨을 지켜야 했던 150명의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젖먹이 아기를 안은 아기엄마도, 아빠의 옷자락을 부어 잡았던 어린소녀도... 가슴이 턱 막혔다.

    4.3 당시 턱에 총을 맞아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했던 고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를 들렸다. 아름다운 월령리 바닷가 근처에 낮은 돌담집앞 무명천으로 턱을 감싸고 지내던 할머니의 집이 있었다. 영상 속 할머니는 자물쇠를 문을 걸어 잠그던 모습이 보였다. 놀라웠다.

    할머니가 있던 곳은 집안도, 담장 안도 아닌, 담벼락 밖이었다. 할머니는 누가 왔었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끊임없이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은 우리였다. 대나무숲 안에서 수도 없이 외쳤을 할머니의 이야기가 이제야 나에게 들렸다.

    4.3 제주의 더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대나무숲에 대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대나무를 거두고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여행! 그것은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나와 너

    그리고 말하지 못한 그곳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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