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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프로젝트-온] 인권, 젠더, 평화의 눈으로 본 제주 4·3
    • 작성일
    • 2020.01.31
  • 인권, 젠더, 평화의 눈으로 본 
    제주 4·3




    글 | 허미선 (제주다크투어 사무국장)


    8월말부터 바닥 공사를 한다구요?

    2019년 7월 24일 수요일. 
    이제 준비는 끝났다. 지금까지 이런 강좌는 없었다 …… 5, 4, 3, 2, 1 오픈! 
    기획강좌 웹자보를 올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참가신청 구글폼을 마우스 오른쪽으로 (光)클릭! (光)클릭! 

    어, 어, 어……벌써 8명, 10명……전화도 온다. 심상치 않습니다.

    2주째 접어들자 벌써 30명이 넘었습니다. 제주는 워낙 도민 대상 무료 프로그램이 많은 곳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무료일 경우 등록만 하고 오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적은 금액이지만 참가비까지 설정해 둔 우리는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 물론 기쁨의 어리둥절! 이었지만요. 목표로 한 35명은 3주차에 접어들자 이미 마감되었고 대기접수까지 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 <인권, 젠더, 평화의 눈으로 본 제주4.3> 강좌 웹포스터

    그래도 모처럼 함께 공부해보겠다고 연락 오는 분들을 외면할 수 없기에 대관장소로 예약해 둔 <도민의 방>에 책상, 의자를 추가로 넣어줄 수 있는 확인차 연락을 드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 런. 데. 

    “저희 8월말부터 바닥공사해서 추석 지나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요. 아니 예약할 때는 문제 없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요.
    담당자님 말씀은 이랬습니다. 공사가 확정되어 예약신청 페이지를 닫았으나 우리 단체가 워낙 일찍(3월말) 회의실을 예약해 둔 통에 어찌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둔거라면서 1회 강연은 문제 없으나 2회 강연은 장소는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시작하자마자 장소 옮기면 참가자들도 혼란스러울 것인데, 즐거운 비명에 생긴 눈주름 주변이 서서히 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우리한테 그러세요…
    일단 대체장소 확보가 시급했습니다. 가깝고도 비싼 회의실을 섭외하고(도민의 방은 무료인데) 안내문을 작성했습니다. 
    무사히 1강이 시작되고 끝날 무렵, 장소 변경안내를 했지요. 그. 런. 데. 또! 또! 혹시나 싶어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더니 공사가 끝났다고, 예약받는다고 하는게 아닙니까. 다시 재공지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겨우 1회 진행했을 뿐인데 마치 한 달은 지난 것 같았습니다. 약간의 혼동은 있었지만 그래도 장소 변경이 없는 것이 어디냐며, 긍정 멘탈 회복을 위해 조용히 초콜릿을 한입 물었습니다.


    ▲ 김종민 선생님 강연 모습


    “폭도자식, 폭도새끼……”

    1강부터 3강까지는 <제주 4·3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항쟁, 탄압, 대학살 시기로 나누어 설명하시는 김종민 선생님의 조용하지만 굳은 목소리가 강의장을 꽉 채웠고, 참가자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지금까지 생존자 7,000명 넘게 생생한 증언을 들어온 선생님의 강연은 그야말로 우리 안에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평소 격의 없이 지내던 이웃들인데, 술만 마시면 그렇게 폭도자식, 폭도 새끼라고 말을 해. 그래도 특별법 만들어져서 이제는 그런 말 하던 사람이 눈치를 보고, 대통령도 사과하고 그러니까 그게 위로가 되지”

    김종민 선생님이 전해주신 제주 4•3 71년이 지나 만난 어르신의 말씀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빛과 어둠이 제주 4•3 진상규명운동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민주화운동 속에서 제주 4•3이 '어둠에서 빛으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지금 제주가 아름다운 건, 그 폐허 속에서도 살아나 맨손으로 일군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다. 부끄러운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운 역사다” 3회 연속 강연자로 함께 해 주신 김종민 선생님이 마지막에 우리에게 묵직하게 던져 주고 가신 메시지입니다. 


    운동화와 고무신


    ▲ 1980년대 의문사 당한 한 학생의 운동화 


    ▲ 섯알오름예비검속희생자 위령비 

    1950년 어느 날 버려진 고무신, 1980년 어느 날 버려진 운동화.
    신발의 주인공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수십 년 동안 밝혀지지 않은 의문사 사건과 제주 4•3을 현재로 소환하는 이유는 국가가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을 유족과 시민사회가 대신해서 입법이라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마음 아파하며 담담히 풀어내신 4.9 통일평화재단의 안경호 국장님. 한국의 과거청산은 사건 가해들에 대한 ‘처벌’을 언급하지도 않고 가해자 ‘처벌’도 생략된 과거청산이라고 평가하는 학자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평가가 ‘틀렸다’,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날이 빨리 오기를 다짐해 봅니다.
     

    ▲ 제주4.3평화공원 내 작품 <비설>


    삼다도를 아시나요?

    이번에는 젠더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4•3과 여성’이라는 주제로 권귀숙 선생님이 강연해주셨습니다.
    흔히들 제주는 ‘삼다도(三多島)’라 합니다. 그 뜻을 아시나요. 세상 사람들은 물,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하죠. 물, 바람은 그렇다치고 왜 ‘여자’도 들어가 있을까요? 생각해보셨나요? 그리고 제주의 <여자>하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나요?
    특히 제주 4·3 당시 조직활동에 참여한 여성들의 활동 동기는 ‘여성해방과 자주독립국가 건설’이라는 증언에서 볼 수 있듯이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했음에도 여전히 여성들은 힘이 없고, 불쌍하고 안타까운 존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4•3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제주의 남성, 특히 젊은 남성들의 희생이 많았습니다. 또한 이념문제와 연좌제 등을 피해 일본에 밀항한 젊은 남성들도 많았습니다. 결국 제주에 남아 있는 여성들은 제주도 재건사업의 
    주역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여성의 강도 높은 노동은 ‘강한 제주 여성’이라는 이미지만 강화시키고 사회적 지위로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권귀숙 선생님이 강연 마지막에 과제로 던져준 3가지 문제의식에 고개가 절로 숙여 졌습니다.
    1. 다양한 여성이미지 창출(저항하는 작품 등)해야 한다
    1. 여성의 일상경험을 역사로 정립해야 한다
    1. 여성의 성폭력을 여성생존자 또는 희생자로 대우해야 한다


    “해가 서쪽으로 가면 오늘 또 하루 살았구나, 그랬지…”


    ▲ 홍춘호 할머니 증언 모습 

    홍춘호(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할머니를 모셨습니다.
    동광리에서 태어나 메밀 농사를 하는 자작농의 첫째 딸로 태어난 홍춘호 할머니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4·3의 화마로 토벌대를 피해 곶자왈로, 동굴로, 오름으로 피난 다녔습니다. 동굴의 칠흑 같은 어둠이 토벌대의 총칼보다 나았다는 할머니.
    이제는 제주 4·3을 알고 싶어 마을로 찾아오신 분들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와서 마음이 편하다고 말합니다. 그마저도 일이 없는 날이면 버스를 타고 화순 가서 친구들과 함께 게이트볼도 치신다고 하는데요. 제주 여성, 홍춘호 할머니는 국가폭력으로 인해 불어닥친 역경을 극복하고 제주공동체를 다시 일궈낸 산 증인입니다. 

    할머니의 "더 이상 4·3 같은 일은 일어나선 안된다, 아픈 역사는 나로 끝이 나야한다" 는 말씀. 이제 우리가 이어받습니다. 홍춘호 할머니, 건강하세요!


    4·3 유적 중 국가 문화재 등록 1호는?

    11월 2일 토요일, 마지막 강좌는 강호진 선생님의 해설로 4.3 유적 가운데 최초로 국가 문화재로 등록된 수악 주둔소를 시작으로 대정읍 지역 4.3 유적을 돌아보았습니다.


    ▲ 수악주둔소 입구 


    ▲ 문형순 서장과 조남수 목사의 공덕비 앞 

    수악 주둔소는 토벌대가 무장대를 진압하기 위해 만든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당시 만든 외성과 내성, 망루, 취사시설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대정현 역사자료전시관을 찾아 항일운동, 해방 이후 단독정부, 단독선거를 반대하며 저항했던 흔적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리고 1949년 모슬포경찰서장으로 근무하며 좌익 활동 혐의를 받던 주민 100여명을 자수시켜 목숨을 구한 문형순 경찰서장과, 조남수 목사의 공덕비도 살펴보았습니다.


    2019년 제주, 안녕(安寧)하세요?

    2개월에 걸친 강좌를 마치며 2019년 제주는 안녕한지, 한반도는 평화로운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동아시아의 지브롤터였던 1948년 제주. 여전히 제주는 동아시아의 화약고입니다. 강정의 해군기지를 시작으로 이미 시작된 ‘군사기지화’를 바라보며 때로는 ‘평화’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갈 우리의 동지들이 가장 가까운 곳에 많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3개월간 숨 가쁘게, 뜨겁게 함께 달려와 준 강좌 참가자분들과 의미 있는 활동에 큰 버팀목이 되어 주신 <인권재단 사람>에 감사드립니다.  

    <인권프로젝트-온>은 폭력과 차별에 반대하고, 인권의 가치를 제고하는 프로젝트를 위한 인권재단사람의 지원사업입니다. 더 많은 인권활동을 지원하려면? 365기금에 후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