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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차별데이데이] 평화롭고 따스한 피쓰풀 나이트
    • 작성일
    • 2019.06.03
  • 평화롭고 따스한 피쓰풀 나이트
    2019 세계병역거부자의날 후기

    글 | 이용석(전쟁없는세상 활동가)


    2017년, 2018년 2년 연속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 때 비가 왔다. 작년에는 너무 많이 와서 준비했던 자전거 행진을 포기하고 도보행진을 했다. 비를 맞으며 걷는 일이 기분은 좋지만, 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이해 우리의 목소리를 한국 사회에 널리 알리려던 계획은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몇 년 동안 해오던 자전거 행진을 포기한 건 비 때문은 아니었다. 작년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대상도, 메시지의 내용도 달라졌다. 더 이상 헌재를 향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게 되었고, 국회를 향해서는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했다. 대체복무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넘어서 어떤 대체복무제가 필요한지를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국회를 대상으로 하는 기획들은 모조리 성사되지 못했다. 국회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었지만, 국회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았다. 여의도에 가면 국회의사당의 둥근 지붕은 건재했지만 그 안에서 국정을 의논해야 하는 국회는 열리지 않았다. 입법 과정에서 국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기능을 멈췄을 때 시민사회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숙제로 남겨졌다. 



    국회를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이 취소된 건 아쉬웠지만,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획한 문화제 피쓰풀 나이트는 이름처럼 평화가 가득한 채로 성대히 치러졌다. 물론 유명 가수의 콘서트나 유명인사들이 나오는 무대들처럼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든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만큼 평화와 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행사였다. 홍대입구역 7번출구 앞 공터는 발 딛을 틈도 없는 홍대 거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한적하게 주변을 거니는 사람들과 문화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같은 풍경 안에서 무리 없이 함께 공존할 수 있었다. 주변 고깃집에서 구워대는 고기냄새만 아니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고기냄새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 연출되었다. 특히나 최근 몇 년 동안 해왔던 자전거 행진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새로운 상황에 맞는 변화의 시도를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피쓰풀 문화제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전반부에서는 병역거부자의 날의 역사와 지난 캠페인에 대한 설명들, 올해 병역거부자의 날 초점 국가인 콜롬비아의 병역거부자들의 상황을 나눴고, 병역거부자의날 바로 다음 날 선고공판이 예정되어 있던 오경택과 임재성 변호사가 이야기를 들려줬다. 재판에서 검사가 오경택에게 던진 질문은 지나치게 공격적이었고, 그 뾰족함만큼 양심의 자유의 가치는 훼손되었다. 헌재 결정 이후 여호와의증인이 아닌 병역거부자들의 재판 이야기는 현재 병역거부 운동이 처해있는 상황을 명징하게 보여줬다. 운동의 성과로 제도적 변화 직전까지 도달했지만 아직 사회의 지배적인 생각들은 강력하다는 것. 예컨대 평화와 안보는 강한 군사력에 바탕을 둔다는 생각이나, 양심의 자유는 국가의 이익이나 국가 시스템을 위해 희생당할 수 있다는 생각들이다. 아마도 우리의 슬픈 예감처럼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더라도 초기에는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심사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을 거 같다. 병역거부 운동은 커다란 성과와 동시에 여전한 한계를 인정한 채 다음 스텝을 준비해야할 것이다. 



    문화제의 후반부의 주제는 ‘여성 병역거부 선언’이었다. 병역거부자의 날 하루 전, 5월 14일 제주에서 여성평화활동가 세 명이 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징집 대상이 아닌 여성들의 병역거부 선언 아이디어는 터키의 여성활동가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병역거부 운동 내에서도 가부장적이고 군사주의적인 질서, 남성들의 활동이 우위에 있고 여성활동가들은 마치 남성 병역거부자들을 돕는 자리에 위치지워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터키의 여성활동가들은 병역거부자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했다. 이 아이디어는 작년 숲이아의 병역거부 선언으로 이어졌고, 이번에 엄문희, 최성희, 에밀리의 병역거부 선언으로 또 한 번 이어진 것이다. 

    3인의 병역거부자가 문화제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피쓰풀 나이트를 위해 편지를 써주었다. 여성 병역거부자들의 편지는 작년 한국에서 최초로 여성 병역거부 선언을 한 숲이아가 낭독했다. 그리고 피스모모 활동가 문아영의 여성 병역거부 선언에 대한 지지발언이 이어졌다. 어쩌면 생소할 수도 있고, “아니 군대도 안 가는데 무슨 병역거부?”라고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는 여성 병역거부 선언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평화활동가 3인의 병역거부를 축하하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싸이키델릭 펑크 블루스 밴드인 빌리카터가 장식했다. 홍대 앞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봄밤의 따뜻한 느낌, 그리고 평화활동가들과 시민들의 상기된 표정이 한 데 어우러졌다. 

     

    시민문화제 피쓰풀 나이트의 성공적인 개최로 2019년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캠페인은 마무리 되었지만, 우리에게 적잖은 과제를 남겼다. 처음 기획 당시에는 피쓰풀 나이트보다 더 큰 비중을 두고 준비했던 국회 대응이 무산된 지점에 대해, 국회가 식물이나 동물이 되었을 때 시민사회진영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과, 대체복무 도입이라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양심의 자유라든지 반군사주의에 대한 인식이 여전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해야하는지 좀 더 세심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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