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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프로젝트-온] 키싱에이즈쌀롱(Kissing AIDS Salon)
    • 작성일
    • 2018.01.08
  • 키싱에이즈쌀롱(Kissing AIDS Salon)
    : 에이즈와 스킨십하다


    글 |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KNP+, 나누리+, 친구사이, 행성인 HIV/AIDS인권팀)

    그간 HIV/AIDS 이슈 관련 집회와 강연, 교육과 토론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근래에는 성소수자 인권단체와 감염인 자조모임을 중심으로 감염인과 비감염인, 전문가와 활동가, 이슈에 관심 있는 성소수자 대중의 교류도 빈번히 이뤄져왔다. 단적으로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성소수자 인권단체와 감염인 자조모임이 함께하는 첫 연대체로서 수년의 연대가 일군 결실이다.

    하지만 활동 뒤에는 아쉬움이 잔영처럼 남았다. 양질의 내용이 공유되고 관계가 만들어짐에도 프로그램 안에서 맴도는 느낌이랄까. 'HIV/AIDS 인권운동'이라는 틀과 경직된 언어가 운동(또는 성소수자 인권단체) 밖 성소수자 대중과 커뮤니티 PL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찾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꾸준했다. 하지만 질병이 혐오로 인식되는 가운데 준비 없이 질병당사자로서 드러내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것 역시 쉬운 선택일 리 없다. 그렇기에 네트워크 모임은 커뮤니티 내 HIV/AIDS 온도를 확인하며 관계를 단단히 엮어야 하는 과제 역시 안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질병에 대해 편한 분위기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떠돌았다.

    문턱을 낮추고 HIV/AIDS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정기모임을 준비했다. 이름하야 '키싱 에이즈 쌀롱(Kissing AIDS Salon)'. 성급하게 대안과 방향을 세우기보다 서로의 입술을 읽으며 커뮤니티 안팎 질병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나누고 모아내자는 취지다. 한편으로는 HIV/AIDS에 덧씌워진 성적 낙인을 뒤집어보자는 욕심도 있다. 서로를 고립시켜온 환경을 더듬어 관계 가능성을 모색해보자는 바람도 작용한 것 같다. 여느 관계의 시작처럼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신호를 주고받으며 교감하고, 쓰다듬고 만지고 끌어안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함께 준비한 활동가는 이를 두고 '스킨십'이라 불렀고, 우리는 모임의 구성을 관계형성의 단계로 설정했다.

     

     

     

     

    ▲ 웹홍보물 시안

    취지에 부합하고자 우리는 과감히 종로의 게이 칵테일 바를 빌렸다. 낯선 회의실보다는 익숙한 공간이, 차가운 형광등보다는 은은한 조명 아래 무거운 주제를 좀 더 부드럽게 가져갈 수 있으리란 기대였다. 게이바는 성소수자로서 나를 드러내고, 당신을 만나는 장소이다. 사실 게이바에서 에이즈는 꺼내서는 안 될 금기어에 가까웠다. 확진 받은 지 오래된 분들에게 물으면 에이즈(AIDS)와 비슷한 발음으로 '아디다스(ADIDAS)'라는 은어를 사용하기도 했다고 하고 아무 말 없이 손으로 A를 만들어 표현했다고 한다. 게이바는 "누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하더라" 라는 소문이 도는 곳이었다. 실제 감염되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소문의 중심에 서 있는 이가 술집에 오기라도 하면 모두 침묵하거나 그가 간 뒤에 마신 컵과 먹었던 음식까지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락스로 소독까지 했다는 말에는 충격 그 자체였다. 옛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에이즈에 '걸린' 사람에 대한 적대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 키싱에이즈쌀롱 진행 모습

    그런 게이바에서 에이즈를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게이바 모든 곳에서 에이즈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굳게 잠겨 있던 문이 열린 듯하다. 키싱에이즈쌀롱은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에이즈에 대해 친숙하게 말하고, 정보를 서로 공유하기 위해 기획된 자리다. 에이즈 확산의 책임을 동성애자들의 문란한 성생활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회를 살다보니 게이바에서 에이즈를 말하는 것에 대해 거북해 할 수 있다. 사실을 인정한 꼴이라고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게이 감염인 사이에서 불만이 제기된 적도 있다. 키싱에이즈쌀롱이 아무리 좋은 기획으로 준비되었다고 하더라도 술집에서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냐고. 인권단체 사무실에서나 하지 왜 게이바에서 이런 행사를 하냐고 화가 났을 수 있다. 두려움이 컸을 거고 의심받기 싫었을 것이다. 키싱에이즈쌀롱에 참석이라도 했다면, 또 그 자리에 있던 모습을 친구가 봤거나 "너 거기 왜 갔어?"라는 질문을 받을 때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게이 커뮤니티가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데 자유로울 수 있으려면 에이즈에 대해서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게이 감염인들이 HIV 확진이후 친구를 잃을까 걱정하고, 애인을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외로워한다. 게이바에서 에이즈를 말해야 하는 건 감염 사실을 말하더라도 친구를 잃지 않고, 애인 사귀는 것이 어렵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게이바는 커뮤니티 그 자체이자 커뮤니티가 서로 교차하는 곳이고, 스톤월이라는 게이바에서 경찰단속에 분노한 성소수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던 것처럼 우리의 일상을 뒤집어놓을 수 있는 혁명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 키싱에이즈쌀롱 진행 모습

    2017년 한 해 동안 총 여덟 번의 키싱에이즈쌀롱이 개최되었다. 우리가 왜, 지금, 이 자리에서 에이즈를 이야기하는지 서로의 고민을 말하기 시작한 첫 자리부터 PL모임들의 집단적인 커밍아웃이 있었던 12월까지 키싱에이즈쌀롱은 쉼 없이 달려왔다. 감염인의 드러내기는 거의 매회 있었고, 대한에이즈학회 신형식 교수나 임우근준 미술평론가처럼 전문성을 가진 이들도 함께해주었다. 기획단은 매월 한 번씩 진행되는 키싱에이즈쌀롱을 위해 토론을 이어가야 했고 참석자의 관심도가 떨어지지 않은 주제를 선정해야 했으며, 패널을 섭외하고 홍보물을 만들어 참여자를 모집하는 일, 이후 허핑턴포스트에 게시할 후기까지 작성하며 에이즈 말하기의 결과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애써왔다. 에이즈와 스킨십하는 순간의 짜릿함과 에이즈에 대한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관심을 보다 높였다는 점에서 키싱에이즈쌀롱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이 행사를 계획대로 잘 치룰 수 있게 한 기획단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이 사업이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도움을 준 인권재단사람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키싱에이즈쌀롱이 완치할 수 없는 상처들을 공감하며 서로의 결핍과 불안, 불완전을 읽는 자리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제는 이곳에서 맺어진 단단해진 관계들이 커뮤니티의 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