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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쉬고] 잃어버린 생기를 찾아 떠난 여행
    • 작성일
    • 2017.10.13
  • 잃어버린 생기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지속가능한 인권 활동을 꿈꾸다!


    글 | 정다운(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줄여서 전장연)라는 단체에서 올해로 4년차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고 있다. "농성 투쟁" 많이 하기로 이름 난 단체이다 보니 매일 매일이 정말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다. 끊임없이 할 일이 생기고 가야 할 곳도 너무나 많다. 외부 일정을 다니다 보면 식사 시간이 불규칙할 수밖에 없고, 저녁이 되서야 사무실에서 할 일을 처리할 수 있으니 야근이 일상이다.
     
    정말 말그대로 "되는대로 살았다." 회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식사 시간을 미루다 보면 밤 9시에 저녁을 먹는 날도 있었다. 새 문서를 켤 힘이 없을 때까지, 졸려서 잠 자기 전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다. 매주 일요일은 다음날인 월요일 주간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안건지를 쓰다보니 토요일 마저 집회에 참석하면 하루도 맘편히 못 쉴 때가 많았다. 연차 제도가 있지만 작년에는 연차를 다 쓰지 못 했다. 단체 활동을 중심으로 살다보니 나의 일상은 늘 뒷전이었다. 운동 부족 때문인지 몸무게가 20kg이 늘었다. 눈은 뻣뻣했고 늘 피곤했다. 그래도 아직 젊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살아졌다. 내가 인권활동가이기 때문에 고생한다는 생각은 별로 안 했다. 우리나라에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이 정도의 피로감과 불편감을 안고 살지 않나.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는 '시간'을 신용카드처럼 쓰고 있는게 아닐까? 돈이 없을 때도 실체가 없는 미래의 빚으로 돈을 써버리는 것처럼, 이제는 쉬어야 하는데 어떻게든 아등바등하며 미래의 시간을 꾸어서 쓰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계속 쓰다가는 더이상 꾸어서 쓸 시간이 없어질 것이다. 난 어떻게 될까? '인권활동'은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일일까?

    그런 고민을 종종 하던 중에 1개월의 안식월을 가지게 된 나는 이제는 되는대로 살지 말고,  '나'를 돌보는 일도 연습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운동을 했다면 좋았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몸을 움직이는 건 극도로 싫어했다. 그래서 단식원을 알아보게 되었다. 단식과 간단한 산책을 하면서 잃어버린 생기를 되찾고 싶었다!

     단식원에 처음 들어가서 간단한 상담을 마치고 바로 단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어서 차량을 타고 산책 코스에 다녀왔다. 처음으로 간 곳은 동백 동산. 2시간 짜리 코스였고 자갈이 많아서 걷기가 불편했지만 나름 가뿐하게 걸었다. 다른 단식원 동료들도 함께 걸었다. 다들 5일차 7일차 단식 중이었는데도 기력 없어 보이거나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다.

    산책을 마치고 마사지도 받고 단식원에 돌아오니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구나... 그날 이후 2~3일 동안은 먹고 싶은 음식들이 계속 생각났다. 삼겹살, 치킨, 곱창, 소고기, 장어구이, 생선, 초밥, 부침개, 파스타, 빵, 과일, ...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가 먹었던 맛있는 음식이 다 생각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5일 쯤 접어드니 배고픔도 없어지고 음식 생각도 많이 없어졌다. 식사하는 시간이 없으니 오전에 산책 다녀오고 사우나에서 씻고 돌아오면 할 일이 없었다. TV를 보면서 계속 쉬었고 또 쉬었다. 9시 쯤되면 잠이 와서 쿨쿨 자고 다시 산책과 사우나의 일과가 반복되었다. 의외의 복병은 발바닥이었다. 매일 10km씩 걷다 보니 물집이 잡혔다. 다른 곳은 그래도 괜찮았는데 발바닥 때문에 산책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6일차부터는 위산 때문에 속이 쓰려 고생스러웠다.



    대망의 8일차 첫 보식을 하게 되었다. 밥그릇의 1/5가량 간이 거의 되지 않은듯한 미음과 아무 건더기도 없는 된장국을 먹었다. 거의 물과 다름없는 미음과 된장국이었지만 너무나 맛있고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약해진 위장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속쓰림과 함께 구역질이 계속 되었다. 보식을 한다고 단식이 다 끝난 게 아니었다. 10일간의 단식 초반부에는 배고픔과의 투쟁이었다면 후반부에는 위장의 마지막 발악과의 투쟁이었다. 식사를 안 할 때보다 더 기운이 쭉쭉 빠지고 있었다. 이때는 단식원을 괜히 왔나 싶어 매우 후회가 됐다. (ㅎㅎㅎㅎ)

    단식원을 나와서 일주일 정도 집에서 더 보식을 해야만 했다. 보식 기간에 오히려 폭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 나는 위장이 약해서 다 토해버릴까봐 무서워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위장이 회복되고 예전에 먹던 그리운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지금은 다 잘 먹고 다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술은 거의 마시지 않고 있다.

    단식을 한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고 건강을 위한 단식(간단한 운동과 충분한 수면이 함께 하는)은 한 번쯤은 해볼만한 것 같다. 일단 적게 먹어도 배가 불러서 적당히 먹어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리고 평소 식습관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배가 부른데도 음식 남기기가 아까워 계속 먹었던 것, 다음날 설사를 하더라도 과식을 반복했던 것,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먹었던 것, 시간이 없어서 허겁지겁 먹었던 것, 아침은 거의 거르고 저녁밥을 저녁 늦게 먹는 일이 잦았던 것... 지금까지 식습관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복귀 후에 실천하고 있는 것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매일 싸가지고 다니기는 힘들지만 하루 종일 사무실에 있는 날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 전에는 매 끼니를 외식으로 해결하다 보니 활동비의 대부분을 식비로 다 쓰고 저축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집밥 만드는 데에 시간을 투자하면서 지출도 많이 줄었고 덕분에 저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 점이 제일 만족스러운 점이기도 하다.

    여전히 나를 돌보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인권활동을 위해 필요한 건강 관리와 약간의 돈 모으기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고,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우리 조직의 동료들과 인권재단사람에게 고맙다. 지금도 해 지고 사무실에 앉아 이글을 적고 있자니 노동시간 줄이기는 영원한 나의 숙제(?)가 될 것 같지만. 내가 꿈꾸는 세상과 나의 일상이 조금씩 가까워지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