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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쉬고] 깨꼼아, 여행가자
    • 작성일
    • 2017.07.27
  • 깨꼼아, 여행가자



    글| 권영은(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건강과 인권지킴이들은 임신한 나를 걱정해 자꾸 농성장 나오지 말라, 집에 들어가라. 했고. 덕분에 집에 콕 박혀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회의와 기자회견, 행사로 가끔 거리에 나섰다가도 컨디션이 안 되겠다며 집에 얼른 돌아오고 했으니, 아가를 위한 여행이기보다 순 저를 위한 여행을 꿈꿨습니다. 편안하고도 안락한 여행. 

    괌, 태국의 끄라비, 베트남 다낭, 하와이까지 참 많은 곳을 머릿속으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비행 시간, 음식, 숙소 등을 고려했지만, 결국은 2시간도 채 안 걸리고 작년에 이미 다녀온 일본 오키나와로 정했습니다. 

    이미 다녀왔기에, 관광보다는 잘 먹고 잘 쉴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습니다. 혼자 집에서 잘 안 챙겨먹고, 운동조차 안 하고 있어 뱃속 깨꼼이는 잘 크는지 통 모르겠었습니다. 쇠고기를 먹은 어느날 비로소 강한 태동을 보여, 참 안 먹였구나. 했습니다. 그래서 “잘 먹이고 잘 키워와야지!” 했었죠. 

    일본 여행책자 루루부엔 엄마의 손맛. 편이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도착하자마자 찾은 식당에 인근 주민들이 모여 음료도 먹고, 소바도 시켜먹는 소박한 곳이었습니다. 40년을 일한 할머니께서 메뉴판을 갖다주시고, 아침부터 동동거리고 비행기를 타고온 탓에 피곤해 다다미방에 누웠더니 괜찮냐고. 따스히 물어봐주셨습니다. 

    이번 여행, 이렇게 보내고싶었고, 그랬습니다. 돌아오는 날에 다시 들러 계란 얹어진 익숙한 케찹맛 오무라이스 먹으며 편안한 만족감을 느낀 것도. 그렇게 편안하고 맛있고 익숙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이 이른 폭염으로 고생할 때 장마로 관광객이 울상인 오키나와에서 저와 짝꿍, 그리고 깨꼼이는 쉬었습니다. 카페에 누워, 식당 다다미방에 누워, 산책하다말고 한참을 앉아서, 비소리, 흙냄새 맡으며, 이 비에 쭉쭉 자라나는 열대 식물 바라보며 있었습니다. 

    흐린 날씨에도, 크게 욕심 내지 않고 실망 않았던 건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짝꿍은 자연주의 출산 수기를 담은 <모든 출산은 기적입니다> 책을 읽었고, 저 역시 출산 이후에도 여성으로서, 활동가로서의 삶을 고민해보겠다며 페미니즘 책을 챙겼습니다. 출산 책을 읽으며 눈물 훌쩍이는 짝꿍 옆에 전 불끈하며 <빨래하는 페미니즘>을 읽었습니다. 



    책이 어쩜 그리 딱 맞았을까요. 독립적이고 페미니스트였던 지은이가 결혼 후 자신의 예전 세대와 다를 바 없게 살고 있는 자신을 보며, 그리고 크게 진보하지 않은 짝꿍을 보며 고전 페미니즘 책을 읽어가며 고민을 이어갔습니다. 여행지에서 짝꿍은 무거운 여행가방을 들고, 운전을 하고, 계산과 물품을 챙기고,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하고자 맛집을 검색해갔고, 전 여행 가방과 숙소를 정리하고 일정을 정해가는 역할이 불균형이 아닌지, 고정된 성역할은 아닌지 순간순간 불끈하기도 했습니다. 뾰족해가는 제 옆에서 짝꿍은 태교라며 엉뚱한 노래를 불러주며, 천진하게 유니콘 튜브를 타고, 출산교실에서 배운 숨쉬기 운동을 웃기게 해가며 저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짝꿍은 당당하고 활기찬 여성으로 자라길 바란다며, 저는 흥 많은 짝꿍을 닮은 깨꼼이이길 바란다며 아기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샤워를 한 사이 서로 몰래 읽어보고는 감동에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구요. 처음 사보는 작은 아기 옷에 신기해하면서 하나씩 출산을 준비했습니다. 

    리조트엔 유난히 아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맨발로 뛰어다니다가 먹다가 자다가 노래부르다가 했습니다. 할머니 품에, 언니 오빠 손을 잡고서, 아빠의 어깨 위에 얹어져서.... 그렇게 내년에는 또 와야지 했습니다. 

    "저 산책길에 있는 부엉이 조각상 옆에 깨꼼이가 서 있을 거야. 내년에는 깨꼼이를 작은 유니콘 튜브에 태우자. "



    깨꼼이가 세상에 온 날을 그려보았습니다. 

    비가 그친 간간히 만좌모 산책, 코우리대교 드라이브, 마애다 플랫 스노쿨링...과 사진 몇 장도 찍었습니다. 분명 오키나와에 오기 일주인 전과는 배크기가 달라졌습니다. 깨꼼이를 쑥쑥 컸습니다. 태동도 더욱 힘차졌고! 

    귀국날 반짝 난 해에 준비해서 간 유니콘을 탔습니다. 깨꼼이도 신나는지 뱃속에서 내내 꿈틀 거렸습니다. 작은 유니콘을 탄 깨꼼이가 그려졌습니다. 

    덕분에 좋은 추억 많이 쌓고 왔습니다. 깨꼼이가 살아갈 세상은 분명 좀 더 나아질 겁니다. 

    ‘쉼’을 선물해 준 인권재단 사람, 국가인권위 후원인 분들 고맙습니다! 

    깨!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