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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쉬고] 멀지 않은 거리 위에 나를 기억했던 안식월
    • 작성일
    • 2017.06.15
  • 멀지 않은 거리 위에 나를 기억했던 안식월



    글_남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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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말합니다. 인권운동은 세상의 맨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세상의 경계를 겨우 붙잡고 살아가는 이들이 끝내 무언가를 쥐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 옆에서 어렴풋이 문장이 떠오른 것 같기도 합니다. 


    삶의 의미를 다시 정의내리는 과정에 나 또한 사람이라고 외치며 인간의 존재를 재정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과정은 호소와 선언, 폭력과 투쟁을 동반하기도 하지요. 생존의 기슭에서 무언가를 걸러내는 순간이면 항상 입안에 단내가 났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인권은 보편적이고 아름다운 언어지만, 그만큼 오용되고 부정되기 쉽습니다. 질서의 구심력은 도덕과 질서를 앞세워 끄트머리의 존재들을 잘라냅니다. 회의와 우울은 언제부턴가 나의 뼈와 살이 되었습니다. 절망이 계속되면 절실함은 모래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갑니다. 활동가에 적합한 사람인지에 대한 물음이 군살로 박혀 걸음을 방해했습니다. 거리에서 외치는 삶은 여전히 익숙지 않습니다. 원치 않지만 꼭 해야 하는 활동들이 생애를 채워갑니다. 매 순간 찾아오는 두려움은 피로로 찾아오곤 합니다. 


    내가 가는 길이 곧 활동이고, 이전에 없던 활동가 모델을 만드는 거라고 정신승리하며 목구멍의 질문을 쓰게 삼키지만, 뒷맛이 깔끔할 리 없습니다. 공동체에서 활동한다고 말하기에 나는 관계 지향적이지 못합니다. 본인의 신변도 챙기지 못하면서 서로를 챙기자는 이야기는 간혹 부끄러움을 남깁니다. 고민을 함께 나눌 동료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계속 무덤을 파고 있지만, 당분간은 동료들로부터 떨어져있고 싶었습니다. 


    은둔의 유혹이 컸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이름도 흔적도 지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생기면 별 것 없이 흘려보냅니다. 제대로 은둔할 수 있을까도 자신이 없습니다. 나를 관조하는 감각을 잃은 걸까?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도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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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한 달 안식월을 가졌습니다. 마침 숨 돌릴 타이밍을 찾던 터였지요. 하지만 따로 떨어져나가면 아주 도망갈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쉼을 갖는 시간을 계획했습니다. 여러분의 노고는 제게 쉼이 된다는 농담과 함께. 활동에 대한 감이 떨어질까 싶어 SNS는 끊지 않았습니다. 


    부업처럼 간간이 들어온 글을 쓰고, 시간에 쫓겨 뒤로 넘겨두었던 책과 전시를 찾았습니다. 미세먼지만 피해도 좋겠다는 생각에 가까운 일본을 도피처 삼았습니다. 온전한 쉼을 계획한 건 아니었습니다. 시부야의 스크렘블 교차로와 가부키초의 현란한 네온에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신주쿠 니초메 골목마다 다닥다닥 불을 켠 업소들은 외지인을 경계하듯 매혹적으로 반짝였습니다. 교토의 사찰과 정원에 위안을 기대했지만, 감동도 잠시, 여행객들의 군집을 헤치며 반복적인 양식의 탑과 불상들을 비교하고 찾아다니는데 소진했습니다. 쉼과 안식보다는 정신없는 풍경으로 분산된 경험들이 이어졌습니다. 다만 사방에서 들어오는 풍경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이 마음 편했습니다. 감각들이 온전히 나를 향했다고 할까요. 내일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건 오랜만에 가진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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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한 바지만, 한국의 반인권적 현실은 잠시간의 쉼마저 기만으로 느끼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쉼이 가능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빈자리 채우며 열일 해준 행성인 동료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갖습니다. 거리를 두고 고민을 정리할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을 여유 있게 만들기까지 <일단,쉬고> 기금을 지원해준 인권재단 사람과 후원인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은 자신이 없어서 못하겠지만, 기약 없는 부정으로 소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활동의 리듬을 찾고 싶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적어도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한 달이었습니다. 누구를 만나야 할지, 누구와 어떤 고민을 나눠야 하는지도 정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후의 시간들이 염세와 냉소로 증발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고민에 매몰되지 않고, 당신과 나의 거리를 조율하며 우리의 갈 길을 만들어내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연대이든 불화이든, 다른 무엇으로 부르건 우리는 멀리 있지 않음을 계속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