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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차별데이데이] 인간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것 – ‘그런 난민, 병역거부자, 트랜스젠더는 없다’
    • 작성일
    • 2020.06.11
  • 인간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것

    - 2020 병역거부자의날 후기

     

    | 날맹(전쟁없는세상 후원인)

      

    전쟁없는세상에서 올해 병역거부자의날 행사를 온라인으로 한다는 소식을 처음 듣고선 한편 아쉽고 한편 솔깃했다. 날 좋은 5월에 사람들과 자전거 행진을 하는 재미가 올해는 없겠구나. 그런데 라이브 방송으로 토크쇼를 한다니, “그런 난민, 병역거부자, 트랜스젠더는 없다라는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국민청원 숫자가 70만명을 넘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던 즈음, 인권교육으로 만난 한 참여자가 난민을 반대하는 근거로 댄 말이 기억난다. 위험하니까 혹은 일자리를 빼앗아가니 받지 말아야 한다가 아니었다. “그 사람들은 진짜 어려워서 온 게 아니라 나라가 전쟁 났는데 자기 살겠다고 다 팽개치고 도망쳐온 사람들 아니냐. 그런 애국심도 없는 자들은 난민 신청할 자격이 없다였다. , 사람들이 병역거부자를 싫어하는 게 이런 거였지 하는 새삼스러운 발견, 동시에 바로 그 이유로 난민도 밀어내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진짜 불쌍한난민과 가짜난민이라는 프레임, ‘선량한병역거부자와 괘씸한 기피자를 갈라쳐내는 프레임이 서로 유사하다는 건 알겠는데, 트랜스젠더와는 또 어떻게 논의가 연결될지 궁금함을 품고 연분홍tv 유튜브 채널에 접속했다.



                                                                                                                             행사 홍보 이미지


    라이브 출연진의 인사와 간단한 소개 뒤 바로 꽁트가 나왔다. 사전 녹화를 했다는 꽁트의 제목은 <당신과 함께>. ‘염라대왕보다 더 재수없는 대한민국 심사관이 난민 심사, 성별정정 심사, 병역거부 심사 과정에서 부당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당사자를 조력하는 위치에서 사이다 반박을 하는 활동가의 단체명에 빵 터졌다. ‘전쟁없는희망세상소수자난민인권센터라니. 활동가들의 고퀄 연기와 상황 설정, 깨알 대사들에 엄지 척! 기획과 촬영, 편집까지 영상 뒷편에서의 수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진정성을 요구받는 자는 누구인가


    난민 인정, 병역거부 인정, 성별 정정 심사는 당사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모욕을 주고 밀어내기 위한 것인가. 꽁트에 이어진 토크쇼를 보며 질문하게 됐다.

     

    (예비군 병역거부를 두고) 판사가 이렇게 묻더라. “군대에서 잘 지냈나? 아무 문제 일으키지 않았냐? 네가 군대를 고민했다면 사건 사고를 일으켰어야 하는데 잘 제대하고 지금 병역거부를 한다는 것이냐?” 내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고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거다. 형수

     

    성별정정심사 제출 서류 중에 성장환경진술서가 있다. 가령 어렸을 때부터 치마 입는 거 싫어했고 고무줄 놀이 안 하려고 했고 축구를 좋아했고 등등 이렇게 단면적 행동으로 설명을 해야한다. 판단하는 기준이 남성, 여성이라는 전형적인 틀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트랜스젠더라면 늘 고통에 시달릴 것이란 시선이 작동한다. 남성의 몸에 갇힌 여성, 여성의 몸에 갇힌 남성이라면 항상 우울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데 보니까 너 친구도 있지 않냐 이런 식인거다. 박한희

     

    여자라면 축구를 좋아하면 안 되고, 병역거부자라면 분란을 일으키는 트러블메이커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심사관으로부터 진술의 진정성, 일관성을 의심받는다니, 그런 심사자들의 판단에 누군가의 존엄이 좌지우지되는 상황 자체가 부당한 것 아닌가. 병역거부자의 슈팅 게임 접속 기록이 나오면 재판정 공기가 묘하게 바뀐다는 형수 님의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본인에게 게임이 어떤 의미인지 열심히 설명해야 하는 위치가 되는데, 검사가 열심히 파도 정작 신경쓰지 않는 판사도 있단다. 병역거부자의 양심이 아니라 판사의 신념과 양심에 의존하는 느낌이라는 얘기까지 듣고 나니 말 그대로 웃기면서 슬펐다.

     

    난민 심사의 경우 심사관 뿐만 아니라 통역자의 편견 또한 개입되기 쉽기에 난민 신청자들이 자국 출신 통역자를 믿기 어려워한다는 은지 님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성소수자를 처벌하는 국가를 탈출해 난민 신청을 했는데,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심사 시간 안에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가 있음을 진정성 있게 일관성 있게 입증해내야 하는 당사자 입장에서 자국 출신 통역관을 과연 쉽게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그 불안과 떨림은 내가 병역거부 재판으로 판사 앞에 섰을 때의 그것과는 차마 비교조차 할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성소수자 난민을 향해) 숨기면 되는데 왜 박해받았다고 주장하냐

    “(트랜스여성에게) 남자랑 키스는 해봤냐

    “(병역거부자에게) 집에 강도가 들어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성애규범, 성별이분법을 비롯한 성소수자에 대한 무지, 신성한 국방의무 이런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저런 말도 안되는 부당한 질문 또한 이어질 것이다. 심사관들이 막말을 할 수 있는 토양,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구조적 무지’(손희정)를 바꿔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의 심사 과정에서 헛소리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견제, 제재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성별정정 심사의 경우 판사가 하는 말이 아예 기록에 남지 않기에 더 막말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쉽게 믿겨지지 않았다. 난민 신청은 권리라는 점, 그렇다면 신청 접수 단계에서부터 장벽을 세워놓고 가짜 아니냐는 의심이 기본값으로 작동하는 심사 과정이 바뀌어야 하며, 심사관 교육을 비롯하여 심사 과정을 감시하고 권리 회복을 돕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말이 크게 들렸다.



    토크쇼 출연진 (왼쪽부터) 난민인권센터 은지,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남웅, 전쟁없는세상 김형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한희



    그런 OO은 없다


    영화 <안녕, 미누>의 주인공 미누 님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다큐멘터리 제작에 동의하며 단 하나의 원칙을 요구했다는 기사를 봤다. “나를 불쌍하게 그리지 마세요.”였단다. 한국에서 불법인 존재로 18년을 살다가 추방된 그가 자신을 불쌍하게 그리지 말라고 얘기한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떠올려봤다. ‘불쌍한 이주노동자로 그려질 때 개별적 존재로서 고유한 서사는 사라지고 만다는 걸 잘 알기 때문 아니었을까. 자신을 불쌍하게 그리지 말라는 미누 님의 말은 피해자다움의 틀로 사회가 원하는 모습을 강요하고 말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을 거부한다는 외침으로 들렸다.

     

    권리를 가질 자격을 심사한다는 발상은 심사하는 권력의 부당함이 아니라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신을 탓하거나 타인을 비난하기 쉽게 만든다. 한희 님은 진짜 여자라면 이걸 () 해야지처럼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질문이 난무한 성별 정정 심사가 존재할 때 커뮤니티 안에서 진짜 여성과 아닌 여성으로 또다시 분열과 위계가 생겨나는 해악을 우려했다. 기준에 충족하지 못한 자가 문제가 아니라 진짜와 가짜라는 기준으로 차별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권력/담론/문화를 문제삼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그런 난민, 병역거부자, 트랜스젠더는 없다의 핵심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다.

     

    병역거부가 양심표출의 종착역이 아니라 폭력과 불화하는 삶의 시작일수도 있는데 양심을 선별한다는 명분으로 그동안 삶에서 흠결없음을 입증하라는 것은 과거와 단절하려 애쓰는 이들에게 굉장히 좁은 문이자 폭력적인 질문이 될 수 밖에 없다”(형수). “본인이 몇월 몇일에 성소수자란 걸 깨달았냐는 질문으로 진술의 일관성을 따진다는 건 정체성을 단지 하나의 사건이나 팩트로 여기고 인간을 납작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오만함이다”(남웅). 이 두 사람이 제기하는 문제가 별개의 논의가 아니라는 것, 즉 각자 고유한 이야기를 품은 대체불가능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해보게 된다. 이런 생각의 계기를 던져준 주최측과 활동가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이 훌륭한(!) 단체들에 관심과 후원이 더 많아지기를 깊이 바란다.

     

     '그런 난민, 병역거부자, 트랜스젠더는 없다' 녹화본 영상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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