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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프로젝트-온] 공간으로 기억하는 국가폭력
    • 작성일
    • 2020.01.31
  • 공간으로 기억하는 국가폭력





    글 | 주현우 (지금여기에 사무국 활동가)



    들어가며 - 그녀는 왜 남영동 대공분실 머릿돌을 탁본했을까?


    “예전에는 말이에요, 아무리 조작된 거라 말을 해도 주변에서 죽일 놈이라 그러고 죽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때 고문받고 간신히 살아남았소 하면 애국자래, 애국자. 참 신기한 일이지.”



    ⓒ지금여기에


    간첩조작 사건으로 청춘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던 피해자들은 고통은 어제의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와 달리 그 시절, 간첩이 사라지면 곤란하다며 물고문, 전기고문, 구타 등으로 평범한 국민을 간첩으로 만든 이들은 이를 공로삼아 국가의 서훈을 받고 명예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실은 숨겨져 있고 고통은 감춰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주변의 이웃이자 피해자들은 고통의 공간과 대면하여 자신의 손으로 과거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그 공간을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억을 질감으로, 탁본으로 남기려는 작업이 바로 그것입니다.


     피해자들이 고통의 공간과 마주하고 벽과 바닥을 '쓰다듬는' 것은 그들 내면에 감춰두었던 상처를 보듬고 쓰다듬는 또 다른 치유입니다.



    남영동 대공분실과 이문동 중앙정보부


    울릉도 간첩단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이사영 선생님에게 남영동 대공분실은 또 다른 이문동 중앙정보부였습니다. 고문실이 있는 5층까지 이어져있는 철제 계단은 밟을 때마다 가슴을 울리는 금속 소리를 토해냈고, 차가운 손잡이로 전해오는 냉기는 어디로 가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피해자의 마음을 더욱 공포로 물들게 했을 것입니다.



    ⓒ지금여기에


    5층에 올라 밭은 숨을 고르고 한참을 둘러보던 이사영 선생님은 문뜩 문에 달린 렌즈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보통 문에 달린 도어 렌즈는 방 안에서 밖을 보게 되어 있지만 고문실의 렌즈는 밖에서 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의 쓰임이 무엇이었는지 짐작케 하는 장치인 셈입니다.


    “여기는 내가 있었던 곳이랑 많이 다르네. 이문동에는 이런 렌즈나 방음벽 같은 게 없었어. 지하라 소리를 질러도 밖에 안 들렸으니까.”



    ⓒ지금여기에



    죽더라도 사과는 꼭 받아야지. 그러려면 여기에 우리가 있었다고 남겨놔야 될 거 아냐


    "얼마 전에 부산 보안대 자리하고 서빙고 보안대 자리를 찾아갔더니 모두 없어졌더라고. 건물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서니 등골이 오싹하데. 그래도 내가 고문 받은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어."



    ⓒ지금여기에


    "건물이나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그 사람들 여전히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거 아냐. 적어도 그 사람들이 인간을 비참하게 고문한 것 정도는 사과해야 이게 정상적인 사회 아닌가? 내가 죽더라도 사과는 꼭 받아야지. 그러려면 여기에서 고통받았던 역사가 있었다 하고 남겨놔야 될 거 아니겠어? 그래서 내가 탁본을 하려고 하는 거야.“



    ⓒ지금여기에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탁본을 하는 이유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동전 위에 종이를 놓고 연필로 문지른 경험이 있잖아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실제와 같은 크기의 탁본은 무언가 끌어당기는 게 있어요.



    ⓒ지금여기에


    금방 질려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무색할 만큼 탁본 모임에 참가한 피해자들은 자신이 남기고 싶은 공간의 질감을 열심히 탁본으로 만들었다. 탁본 작업은 목탄을 문지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탁본을 끝내고 왜 이 장소를 탁본했는지 그들 스스로 이야기한다. 그 장소가 어떻게 보였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타인과 나누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탁본을 하는 이유는 기록을 남기는 것을 넘어서 그들과 말과 감정을 나누기 위해서다. 40~50년의 터울을 넘어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의, 그러나 흔하지 않은 아픔을 함께 나눌 때 비로소 회복의 시작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로 말이다.



    ⓒ지금여기에


    ※ 사진을 이용하려면 <지금여기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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