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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차별데이데이] 동료를 위한 동료의 추모
    • 작성일
    • 2020.01.10
  • 동료를 위한 동료의 추모
    2019 홈리스기억의날 후기 

    글 | 2019홈리스추모제에 함께한 여러 활동가와 당사자가 함께 씀


    열아홉 번 째 홈리스추모제

    2001년 시작된 ‘홈리스추모제’가 열아홉 해를 맞게 되었습니다. 매년 동짓날을 기해 진행되는 추모제는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한 당사자를 추모하는 자리이자, 막을 수 있는 죽음을 막지 않는 현실을 고발하고 홈리스 권리보장을 위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요구를 모으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홈리스추모제가 열린 지난 19년 동안, 변화가 없진 않았습니다. <노숙인 등 복지법>이 제정되었고, 이러저러한 홈리스 지원책이 마련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홈리스 상태에 내몰린 사람들의 삶의 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권리가 아닌 자립에 방점을 둔 법제와, 그 법제에 기초를 둔 제한적이고 한시적인 지원책으로 사태를 해결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변하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은 여전히 홈리스 상태를 살아가는 이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떠밀고 있습니다. 



    이에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이하 기획단)은 다시 한 번 홈리스추모주간을 선포하고 인권의 진공상태에 다름 아닌 홈리스 상태를 지양하기 위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에 나섰습니다. 기획단은 지난 12월 16일 서울역 광장에서 추모주간을 선포하고, 홈리스 사망자 추모를 위한 활동을 진행하는 한편, ‘양동 재개발지구 쪽방 주민 실태 발표 및 서울시 대책 요구 기자회견’, ‘양동지역 재개발 쪽방 주민 주거대책 마련을 위한 문화제’, ‘홈리스 명의도용 과세처분 무효 확인 소제기 기자회견’ 등을 열고 홈리스의 당면 문제의 해결과 열악한 복지지원의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2019 홈리스 추모문화제, ‘동료를 위한 동료의 추모’

    홈리스추모주간 마지막 날이던 2019년 동짓날(12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2019홈리스추모문화제’가 열렸습니다. 기획단은 이번 추모문화제의 기조를 ‘동료를 위한 동료의 추모’로 정하고, 홈리스 당사자가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자리가 되도록 추모문화제를 기획 · 구성했습니다.

     

    추모문화제가 열리기 전, 광장에서는 여러 부스 행사(마당사업)가 진행됐습니다. 예년과는 달리, 이번 부스행사는 홈리스 당사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았고, 실제 당사자 분들의 호응과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습니다.




     

    부스 행사와 동지팥죽 나눔이 마무리 된 저녁 7시, 서울역 광장 내 계단에서 본행사인 ‘2019 홈리스 추모문화제’가 시작됐습니다. 무용가 이삼헌 씨의 위령무가 끝난 뒤, 이번 추모문화제의 핵심이라고 할 ‘동료의 추모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첫 번째 추모발언자는 아랫마을홈리스야학의 학생이기도 한 홍난이 씨였습니다. 10여 년 동안 거리노숙을 해야만 했고 지금은 쪽방과 고시원을 전전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는 그녀는, 6년 전 세상을 떠난 ‘금안 언니’를 추모하기 위해 자리에 섰습니다. 

    "열아홉 처음 노숙을 했을 때, 언니가 말을 걸어줬어요. 언니는 남편의 가정폭력과 바람 때문에 이혼을 하고 노숙을 한다고 했어요. 언니는 빈병을 모아 팔고, 구리를 까 팔았어요.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알아서 사람들을 웃기곤 했어요. 7년 전,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 돼’ 그 말이 마지막 인사였어요. 언니는 무료급식소도 잘 이용하지 않고, 고생을 하다가 쪽방에서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했어요. 전기장판 2~3만원만 주면 산다니까 말을 안 듣더니 쪽방 찬 바닥에서 죽었다고 했어요. 언니의 시신을 하루장 했다는 소식만 듣고 어디에 모셔졌는지 알 수 없었어요. ‘언니야, 내가 다음 명절 땐 우리가 놀던 2번 출구로 가서 소주 한 병을 사가서 뿌려줄게’"

      

    두 번째 발언자는 예전 홈리스야학의 학생이자 현재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행복’님이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 고시원에서 세상을 떠난, 오랜 기간 시설에서 함께 생활했던 동료였던 故나승옥 님에게 추모의 말을 꼭 전하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동료들의 추모의 이야기도 함께 전했습니다.

    “무엇이 급해서 그리도 빨리 가야만 했는지요. 오늘따라 나승옥 님이 더욱 더 보고 싶어지고, 그리워지고, 눈물이 나네요. (...) 여기에 같이 오지는 못했지만, 나승옥 님과 같이 시설에서 지냈고 나승옥 님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두 분의 추모 이야기를 제가 대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한 분은, 나승옥 님이 돌아가신 후 한참이나 고시원 방에 방치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어떤 삶을 살았건 끝이 그래서는 안 된다 했습니다. (...) 다른 한 분은, 나승옥 님의 마지막 육신을 운구하면서 눈물보다 허망한 한숨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갑작스런 비보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술 한 잔 제대로 올릴 수 없어서 그저 죄송하다고, 용서해달라고, 그간의 기억을 깊이 간직하겠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발언자는 동자동 쪽방에서 살고 있는 송범섭 씨입니다. 그는 수 십 년을 알고 지낸, 형제보다 가까웠던 ‘영철이 형님’을 몇 개월 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1년 넘게 고인의 병간호와 장애등록, 수급신청 등의 행정절차를 도맡았던 송범섭 씨는, 추모발언을 하기 전 “가난하다고 제대로 치료를 안 해준 병원들”에 분노하며 고인의 이야기를 꼭 세상에 전하고 싶다 말했습니다. 

    “영철이 형님이 다친 그 날 이후 1년 5개월을 투병생활을 했는데, 병원에서 서로 수술을 거부해 무려 6개의 병원을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병원들이 치료를 안 해주는 바람에 골든 타임이라는 시간을 놓쳐서 돌아가시게 된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빨리 수술만 했으면 이렇게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형님과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서 술 한 잔 하고, 사는 얘기도 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가까이 지냈던 형님이 떠나고 제가 상주가 되어 마무리를 했습니다. 유골을 제가 모시고 강과 산이 접해 있는 곳에다 뿌렸습니다. 뿌리는 순간, 이게 마지막이구나, 영철이 형과 마지막이구나 싶었습니다.” 

    위 세 명의 홈리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여 구성된 ‘홈리스 권리선언’을 낭독한 뒤, 무수한 홈리스 사망자들의 생전 발자취를 따라가자는 취지의 추모행진이 이어졌고, 추모행진을 끝으로 2019 홈리스 추모주간의 모든 일정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더 나은 말을 찾지 못해, 홈리스 권리선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추모는 홈리스의 죽음을 수용하고 다시 세상을 살자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홈리스로 살게 하는 조건에 눈 감는 세상, 홈리스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상, 자립과 자활을 강요하는 세상, 부실하고 부족한 복지만을 내세우는 세상이야말로 홈리스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원인임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추모는 멈출 수 있는 죽음을 멈추게 하지 않는 세상에 반대하고,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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