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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활동119] 제천화재참사가 알려준 것들
    • 작성일
    • 2019.09.09
  • 제천화재참사가 알려준 것들



    글 | 유해정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처음부터 뭔가 일을 벌이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지난 5월 416재단이 주최한 재난피해자 지원관련 토론회 때 제천화재참사 유가족 대표와 법률지원을 담당해주시던 변호사분과 처음 인사를 나눴어요. 그때만 해도 늘 그러하듯 참사 피해자분들의 황망함에 민망하고 부끄러웠지만, 뭔가 거들일이 있다곤 생각하지 않았죠. 근데 일이 되려고 했던 건지, 토론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지하철을 같이 탔지 뭐예요. 인사를 나눴는데, 모른 척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도 같고,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 슬쩍 안부를 물었던 것뿐이었는데, 소방청에서의 수사결과며, 검찰의 불기소처분과 재정신청 기각, 국회의 제천화재 관련 위원회까지 가슴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거예요. 듣고 있다보니, 이런 말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아, 네. 뭔가 보탤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제천화재참사’를 검색했어요. 2017년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의 9층짜리 복합상가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사망, 37명이 부상한 참사라는 개요 밑에 수많은 기사들이 달렸는데, 대부분의 기사들이 화재 당시 소방청의 대처에 대한 논란, 충청북도의 책임 회피에 관한 공방이었어요. 피해자분들이 피켓을 들고 길거리로 뛰어나오지만 않으셨지, 당시 대응과 관련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둘러싸고 오랜 동안 싸워 오셨더라고요. ‘아, 왜 난 이 참사가 원만히 해결되고 있다고 생각했지?’ 무지함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어요. 부끄럽기도 했고, 민망하기도 했고, 또한 동시에 화가 나고, 분노스럽기도 했어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이후에 발생한 참사는 뭔가 다르게 처리되겠지, 세월호 참사로 곧추 세워진 정권이니 뭔가 새롭게 길을 찾아가고 있겠지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 같아요. 


    “화재의 사회적 유통기간이 지났다?”

    급한 마음에 동료 인권활동가들에게 전화를 했어요. 사정이 이만저만 한데, 뭔가를 좀 긴급히 하면 좋겠다고. 제천화재참사 피해자분들에 대한 인권실태조사는 그렇게 기획된 거였어요. 단체별 동참을 요청하기에는 시간도 촉박하고, 국회 제천소위원회 활동도 실태조사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어, 단체보다는 소수의 개인 활동들로 구성된 꾸렸어요. 모두 참사, 재난 피해자들을 만나왔던 활동가들이라 든든했는데, 그 다음 문제는 역시나 ‘재정’이었어요. 제천까지 오가는 비용, 자료집 제작비용은 쉽게 충당되기 어려웠거든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권재단 사람 119 기금에 신청했는데, 며칠 만에 연락이 왔어요. “뜻있는 기획에 감사합니다”라고요.

    6월 한 달 동안 5명의 유가족과 5명의 피해생존자 분들을 만났어요. 그분들은 참사 발생 후 1년 6개월, 18개월의 시간을 피해자들은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었어요. 참사 직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국무총리, 행정자치부 장관 등 고위급 행정관료, 정당 대표 등이 앞 다투어 피해자들을 만나 범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그 모든 말들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기까진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을 만났을 때의 반응은 “화재의 사회의 유통기간이 지났다”는 자조어린 탄식과 절망이었죠. 

    우리는 그 탄식과 절망을 인권의 관점으로 들으려 시도했어요. 국내의 재난 피해자 지원 정책이 여전히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구호와 지원의 차원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을 피해자의 관점으로 역전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 거죠. 피해자가 뭐냐고요? 피해자는 여러 말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전혀 다른 세계에 놓이게 된 일상을 가진 사람들로 정의한다면 보다 쉽게 이해될 듯해요. 즉 우리는 재난으로 전혀 다른 세계에 놓이게 된 분들의 일상을 인권의 언어로 세상에 말하고 싶었어요. 그건 정부의 시혜가 아닌 이들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정부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건, 피해자의 권리, 안전, 일상을 침해한 거예요! 라고요. 인권의 관점으로 재난을 본다는 건, 재난이 인간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심각하고도 총체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자각으로부터 시작해요. 때문에 재난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재난의 전 국면에서 자신들의 인권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을 알리고, 재난의 전 국면에서 국가를 비롯한 책무주체들의 핵심적 의무 이행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죠. 국가가 재난을 어떻게 관리, 예방, 대처하느냐에 따라 재난은 불예측적이지만, 피해의 정도와 수준은 매우 달라질 수 있거든요. 

    우리의 시각은 2014년도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면서 얻어진 관점이었지만, 재난 피해자들은 굳이 인권의 관점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아도 인권의 관점으로 말하고 있었어요. 참사가 발생한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과 관련한 책임자 처벌에 관련해서도, 참사 이후 피해자들이 겪어야했던 사회적 냉대와 소극적인 지원에 관해서도, 그리고 관련한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정보에서 소외되고 논의에서 배제되는 현실에 대해서도요. 


    “책임, 한번 꼭 묻고 싶다” 

    “초창기에 저는 책임자처벌을 하지 말자 그랬거든요. 하지 말자 그랬어. 어찌됐든 간에, … 공무원들 고생했다. 그리고 우리 살아남았지 않았느냐? (중략) 이제 바뀌었어요. 처벌하자고 강력하게 외치고 있어요. 만약에 사고 초기로 정말로 돌아간다면 처음부터 나 정말 강경하게 나갔을 거예요. 정말로 강경하게 나갔을 거예요.” 

    제천화재참사 피해자들은 진상규명 과정과 결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어요.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진상규명이 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고 피해자들의 참여가 제한되며 관련 정보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는 한계 속에서 진실공방 및 관련한 책임 부여에 관한 갈등이 장기화됨에 따라 무력감과 회의감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공통된 목소리였죠. 이러한 마음은 희생된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과 자책 등의 마음을 증폭시키고 있었어요. 또한 동시에 피해자들은 사회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어요. 어렵게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목소리들은 이를 정치적 문제나 보상 규모를 키우기 위한 시선으로 보는 태도 속에서 묻히고 있었고요.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피해자분들은 공동체 내에서도 고립돼 있었거든요. 이는 제천화재참사로 인해 지역경기가 침체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온 것이었어요. 소방관을 질타하는 목소리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함께 이제 그만하라는 이웃들의 시선에 특히 유가족분들은 합동분향소와 유가족협의회의 사무실을 유지 하는 것은 물론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조차 힘들었다고 말했어요. 오죽했으면, “제천시민들이 피해자들의 갈등 유발자”라는 한탄까지 쏟아내셨을까요. 

    “많이들 슬퍼하시고 애도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았다고는 믿고 싶은데, 합동분향소 있던 체육관에 현수막을 누군가가 훼손한 경우도 있었어요. 줄을 다 끊어버리고. 어떤 상인연합회에서는 현장 근처에 있는 현수막을 자기들이 다 철거해버리고. 참사 100일 꽃을 만들어서 29송이를 현장 펜스에 걸었는데, 2-3일 있다가 상인들이 다 떼었더라고요. (중략) 꽃 달아놨다고 장사가 잘 안 되는 것도 아닌데. 아… 상인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유가족들은 참사에 대한 완전한 사건 종료시까지 참사가 발생한 건물을 증거보존하고 싶어 했지만 공동체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쳤다. 참사현장은 지난 7월 철거가 종료되었고, 향후 주민복지기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출처: 인권실태조사단)

    “사람들을 구한 것을 후회한다”

    때문에 적지 않은 피해자들이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을 경험하고 계셨어요. 이는 참사로 인한 고통이기도 했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좌절되고 공동체마저 냉담한 상황에서 발생한 2차적 고통이기도 했어요. 적지 않은 수의 분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이하 PTSD)를 호소했고, 불안과 우울은 증가한 반면, 삶의 만족감은 감소했다고 호소하셨죠. 수면장애, 대인기피증과 같은 증상, 신체적 질병 등은 이러한 심리적 고통이 외화된 증상이었고요. 하지만 관련된 정부의 지원은 이미 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모두 중단된 상황이라 모두 개별적인 차원에서 문제에 대처하고 있었어요. 또 일부 피해자들은 참사 당시 입은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원이 끊겨서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받지 못해 고통받고 계셨죠. 

     
     참사 당시, 사회와 정부는 부상자들이 합심해 희생을 최소화한 것에 환호했고,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지금 생존자들에게 남은 건, 끝 모를 고통과 트라우마다. “지금 와서는 저는 사람들을 구한 것을 후회합니다. (중략) 내가 왜 사람들을 구하고서 이 고통을 받나, 정부는 저렇게 나 몰라라 하는데, 후회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생존자의 말을 깊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출처: 인권실태조사단)  

    누군가는 트라우마로, 누군가는 진상규명활동으로 경제적 문제에 골몰할 수 없는 상황들이었어요. 생업을 바꾼 분도, 일터에서 쫒겨난 분도 계셨지만 경제적 곤궁함에 대해 말을 많이 아끼시더라고요. 진상규명의 진정성이 왜곡되는 상황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할 경우 진상규명이 배·보상의 규모를 키우려는 행동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어요. 이러한 현실들은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인식의 전환은 이뤄내지 못했구나하는 마음에 우리를 무척이나 초라하게 했어요. 그리고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 비해 자신들은 너무 지원 받은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한탄은, 우리에겐 충격이었죠. 피해자가 피해자를 비교하고 부러워해야 하는 참담한 상황. 과연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 무엇을 잊지 않았고,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요.  

    실태조사를 마치며 우리는, 제천화재 참사 피해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과 재난정책 전반적인 제고를 요청하는 실태조사 보고서를 작성했어요. 제천시, 충청북도, 국회 등에 전달했지만 이것이 어느 정도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현실화될지는 자신이 없었죠. 또한 참담함과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어요. 수많은 재난 피해자들의 고군분투는 우리의 인권운동이 재난과 관련해 무엇을 해왔는지, 무엇을 해야하는 지를 성찰하게 했거든요. “모든 사람은 재난 피해자의 아픔에 동참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말하고, 모이고, 행동할 권리를 갖는다.”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며 만든 416인권선언의 한 구절. 이 선언이 말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당신과 내가 함께 제천화재 참사 피해자들의 든든한 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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