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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쉬고] 그야말로 “일단 쉬고”
    • 작성일
    • 2019.09.06
  • 그야말로 “일단 쉬고”



    글 |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들의 재충전과 쉼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보면서 매년 제출할꺼다라고 하면서도 내지 못했었다. 그것 자체가 일로 느껴지는 상황이라, 일을 뭐 하나라도 덜어내면 덜어냈지 쉬겠다고 뭘 더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비상한 용기가 생겼다. 사실 애 때문에 “무조건 휴가”를 가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재정적인 부담도 컸고, 조바심 내는 휴가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극성수기가 어린이집의 여름방학이다 보니, 도대체 이 시기에 나는 어디에서 아이와 편안한 쉼을 가질 수 있을까가 매년 고민되었었다. 그러다가 “일단, 쉬고”고 눈에 확 들어왔고, 마침 제주의 삼달다방 이음동도 공사가 완료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호라, 일단 쉬고에 선정되기만 한다면야 내 집처럼 편안한 삼달다방과 제주의 자연이 분명한 쉼을 주리라! 그렇게 우리 가족의 제주 삼달로의 여행이 시작됐다. 
    프로젝트가 선정되자 마자 일찌감치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러나 아뿔사, 렌트카 가격을 대충 알아봤던 것이 실수였다. 극성수기여서 경차를 렌트하는데만 백만원을 호가했다. 결국 비행기를 포기하고 서울부터 차를 가지고 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제주도를 포기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일정이 끝나자마자 전남 장흥으로 달렸고, 다음날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들어갔다. 

    제주도 표선해수욕장


    핸드폰 없이 휴가보내기   

    고백한다. 나는 일걱정, 돈걱정, 핸드폰 없는 3무(無)여행을 가겠다고 기획안을 냈지만, 안타깝게도 집에 두고 가지 못한 핸드폰은 나의 가방과 주머니에 항상 장착되어 있었다. 그러나 취지를 살려서 아이와 함께 노는 시간에는 핸드폰의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다는 결심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다행한 것은, 대부분의 시간을 바닷물 속에 들어가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핸드폰의 메시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제주도라는 지역적 조건과 극성수기 휴가철이라는 시기조건이  ‘나는 휴가 중’임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했다. 사실 기존에는 휴가를 쓴다는 것도 미안해서, 다른 활동가들이 고생하는데 애 있다고 쉬는 게 민망해서, 스스로를 괴롭히며 휴가를 보냈었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휴가 땐 더 열심히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을 보낸 적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핸드폰 없는 여행이라는 애초의 기획 때문인지 “나는 휴가 중이라 메시지 확인 못합니다. 아니, 안합니다.” 라고 작심여행을 했다. 숙소에서도 애써 핸드폰을 던져 두었다. 아이의 사진을 찍는 일 외에는 무심하려고 애썼다. 핸드폰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그 집착하는 시간을 아이와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반도 지키지 못했다고 양심고백 할 수밖에 없다.   


    삼달다방 마당에서 놀기


    활동가를 가족으로 둔다는 것   

    그동안 내가 하는 활동의 정당성을 이유로 가족들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해 왔었던 것 같다. 가족보다 더 우선한 어떤 가치와 신념을 지키느라, 인권활동을 하느라 가족에게 마음과 시간을 쏟지 못함에 대해서 늘 이해해 주기만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알 리가 없는 여섯 살짜리 나의 딸은 엄마에게 충분한 애정과 시간을 기대했고, 늘 바쁜 엄마는 다그치는 엄마가 되어 버렸다. 나의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이야기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이의 요구를 수용해 주지 못했다. 왜? 나는 늘 시간에 쫒겼다. 그런 엄마를 아이는 정말 재빠르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만큼은 활동가라는 나의 직업을 떼고, 순전히 그저 엄마로서 가족으로서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가족에게 아무 강요도 하지 않고, 온전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휴가이고 싶었다. 활동가를 가족으로 두었다고 해서, 가족에게 무조건적인 이해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인정해야 했다. 적어도 휴가만큼은 그냥 휴가이고 싶었다.  


    삼달다방 앞에서


    제주가 주는 쉬는 시간 

    제주여서일까? 빡빡한 시야속에서 살다가 뻥 뚫린 공간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쉬는 시간이었다. 매일 가는 바다가 지겹지 않았다. 삼달다방 마당평상에 누워만 있어도 예술 같았다. 바람도, 구름도,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도, 안개 낀 동네 길도, 첩첩이 겹쳐진 숲길도, 마치 하늘로 닿을 듯 뻗은 도로 위를 달리는 기분도, 제주도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 지인들과의 유쾌한 술자리도 마냥 흥겨웠다. 그렇게 그렇게 휴가가 지나갔다. 제주가 주는 쉬는 시간은 충분했지만, 사람 욕심이 끝도 없다. 나는 또 제주를 가고 싶다. 인권재단 사람의 <일단, 쉬고> 덕분에 누린 호사스런 나의 휴가가 더 많은 활동가들에게도 제공됐으면 좋겠다. 활동가들에게 쉴 이유도 만들어주고, 재정도 지원해 주고, 쉬는 시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상념들에 빠질 기회를 더 많이 줬으면 좋겠다. <일단, 쉬고>에 신청서를 내는 것조차 일로 느껴지는 피곤한 활동가들이여, 일단 내 보시라. 그러면 어떻게든 쉬게 된다.   


    제주도 곽지해수욕장


    <일단, 쉬고>는 쉼과 재충전을 위해 활동가 스스로 기획한 여행, 취미활동 등 인권활동가 개인 프로젝트를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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