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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쉬고] 여유와 용기를 속삭여 준 여행
    • 작성일
    • 2019.09.02
  • 여유와 용기를 속삭여 준 여행



    글 | 랄라(다산인권센터)



    1년이란 안식년이 막상 주어졌을 때 무엇을 해야 할까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1년이나 쉬는데 해외는 나가봐야 하지 않을까? 멀리 한번 가야하지 않을까?’란 마음에 런던행 비행기 표를 끊었습니다. ‘영어도 잘 못 하는데 의사소통은 가능할까?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특히, 없는 살림에 가는 유럽이었던지라 호텔 등 숙박비를 감당할 수 없어 에어비앤비와 캠핑장을 주로 이용하고 교통수단도 렌트카 등을 주로 이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걱정은 갈수록 부풀어 올랐습니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고민의 풍선이 터지기 직전 드디어 런던으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우아하게 캐리어를 끌고 입국장에서 공항 패션을 선보이며 인증샷을 찍는다고 하는데, 캠핑할 목적의 용품들을 담은 대용량 캐리어를 끌고 배낭 가득 짊어진 짐은 생활 여행자로서의 출발을 알리는 시작이었습니다. 4월 29일 출국하여 26일 동안 런던, 파리, 스페인 도시 곳곳을 누비며 생활 여행자로서 잘 살아남아 현재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100년이 넘은 런던의 지하철에 짐을 옮기느라 애를 먹었지만 템즈강을 바라보며 무거운 어깨를 쉬고, 주문이 어려워 매번 식당에서 어설프게 주문한 파리 레스토랑의 음식은 생애 최고의 별미였습니다. 높은 서비스 비용, 주말마다 문을 닫는 런던, 파리, 스페인의 슈퍼마켓 등 편의시설을 보면서 24시간 불 밝혀진 한국의 편의점 불빛이 노동자들의 삶에는 어두운 그림자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 숲이 아닌 키 낮은 건물, 재건축·재개발이 아닌 오래된 건물을 고수하는 유럽의 문화가 조금 더 달리 보였습니다. (물론 누군가의 삶을 뉘일 비용은 유럽이나 한국이나 높은 건 마찬가지 였습니다.) 곳곳 마다 세워진 고성들과 중세시대의 예술품들을 보고, 한 블록마다 있는 미술관들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책에서만 접하던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실제로 본 감동은 책의 느낌과는 다른 살아서 꿈틀대는 두근거림이었습니다. 특히,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전시된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한동안 제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이 폐허와 울부짖음이 전쟁이란 것이다.’ 그림이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평화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런던, 파리, 스페인의 곳곳을 둘러 본 26일의 시간이 준 감동은 오랫동안 마음과 머리에 맴돌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은 혼자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습니다. 파트너와 아이, 오랫동안 한 공간에 살고 있지만, 몸과 마음은 늘 다른 시공간을 살아왔던 셋이 거의 한달의 시간을 꼭 붙어 지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이 지난 후 곧 〈다산인권센터〉 상임 활동을 시작해 왔기에 아이와 하루종일을 붙어 있는 시간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티격태격, 투닥투닥 거리며 온종일을 보냈지만 그간 못해왔던 말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함께 있는 시간의 크기만큼 사랑이 커가는 것이 아니란 걸 잘 깨닫게 되는 계기도 되었답니다.^^


    쉼을 갖기 전, 나는 늘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일이 바쁜 것보다 내 마음이 더 바빠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안식년을 시작하고도 안식년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무언가를 배우고, 끊임없이 해야 할 뭔가를 찾아 배회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바쁜 일상에 찍는 쉼표가 무언지, 마음을 채찍질하며 바쁘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잠시 멈추고, 돌아보고, 또 나아가고 빠르지 않아도, 마음 졸이지 않아도 오늘을 살아 낼 수 있다는 여유,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낯설어도 살아낼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 여유와 용기의 마음 잊지 않고, 안식년 복귀 후에도 쉬엄쉬엄 행복하게 활동해보려고 합니다^^ 이런 삶의 쉼표를 응원해주신 〈인권재단 사람〉 감사합니다!




    <일단, 쉬고>는 쉼과 재충전을 위해 활동가 스스로 기획한 여행, 취미활동 등 인권활동가 개인 프로젝트를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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