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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쉬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일
    • 2017.10.24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글 | 최은아 (인권운동사랑방)


    인권활동 23년차 활동가인 나, 어디 가서 자신을 소개할 때 “인권활동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면 그 다음엔 꼭 이런 말을 듣는다. “좋은 일 하십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인권활동만큼 극한 직업 없어요.”라고 말한다. 좋은 일(?) 이면에 인권옹호 활동을 하면서 겪는 삶의 무게를 알고 있을까? 인권활동가들이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어려움을 감내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신·정서적 소진까지 경험하고 있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2015년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가 있던 날로부터 2016년 10월 25일 경찰이 고 백남기 농민의 부검영장을 집행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날까지 정말 많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잦은 집회에서 경찰감시 활동을 하고 기록하고 밤을 새우면서 보고서를 쓰고 다음날 기자회견을 하는 싸이클로 약 1년 동안 살아왔다. 퇴근도 없고 휴일도 없고 계속 긴장된 상태로 살다보니 몸이 성하지 않았고 마음은 무엇인가로부터 쫓기고 있었다. 몸과 마음을 이완하기 힘들었다. 아마도 소진된 상태였던 것 같다. 그렇다보니 사람들과 관계도 편할 리 없었다. 당시 내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비참했다. 세상의 모든 말들이 뾰족한 가시로 다가왔다. 

    그래서 과감히 휴식을 선택했고, 인권재단 사람의 지원을 받아 상담을 경험하였다. 어마무시한 상담비용을 감내하기란 인권활동가의 활동비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인권재단 사람의 활동가 휴식 지원 프로젝트 <일단, 쉬고> 덕분에 용기를 내었다. 


     ▲ 개인상담이 이루어진 공간

    개인상담은 5월10일부터 8월28일까지 25회기를 진행하였다. 10회기를 기본으로 시작하였는데 개인상담을 하는 동안 시간이 더 필요해서 상담선생님과 합의하여 회기를 늘렸고 그에 따른 비용은 상담선생님이 후원을 해주었다. 상담은 일주일에 1회 50분 동안 진행하였고 중간에 MBTI 등 심리·성격유형검사를 하면서 나의 마음과 정신 상태, 성격유형을 알 수 있었다.

    상담을 진행하고 종결하면서 나 자신에 대한 알아차림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알아차림이란, 내 의식과 몸이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무슨 짓 하며 살고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가령, 나의 행동 패턴 중 하나는 무엇인가에 관한 걱정을 하면서 일과 사람에 깊게 빠지곤 하는 것이다. ‘걱정’은 내 마음에서 절대 나가려 하지 않고 나를 들들 볶거나 채찍질을 하면서 나로 하여금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걱정’의 자리에 때로는 ‘불안’이나 ‘분노’가 들어오기도 하였다. 일을 하는 동안은 나는 깊게 몰두하면서 내 의식과 감정을 붙잡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알아차림을 훈련하면서 내 감정 상태는 어떤지 내 의식은 어디에 있는지 관찰하니 일과 사람, 감정에 깊게 빠지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은 내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높여서 자존감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개인상담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명상을 통해 내가 변화하고 싶은 지점을 계속 훈련한 것이 효과가 있었다.     


    ▲ 집단상담을 끝내고 마셨던 연꽃차

    집단상담은 5월13일, 6월10일, 7월8일 세 차례 진행하였다. <웰바이-상실과 치유>라는 큰 주제로 매월 소주제를 바꾸어 강의를 듣고 집단상담을 참여자들과 함께 진행하였다. 내가 집단상담에서 내놓은 이슈는 ‘고통’에 관한 것이다. 자식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은 내 또래 사람들이 많다. 엄마 아빠로서 자식을 잃은 고통....이 내게로 다가온 경험이 있었다. 백남기 농민의 자녀들은 나와 비슷한 나이이다. 아빠를 잃은 딸의 고통....또한 내게로 다가온 경험이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혐오세력에 저항하며 광장을 지켜낸 활동가들의 힘겨움이 나안에 녹아있었다. 재난참사와 국가폭력, 혐오세력이 자행하는 폭력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인 책임을 만들어 나가는 인권활동을 펼치면서도 뭐랄까 ‘인간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있었다. 이른바 가해자들이 너무 사악하게 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너무 순진하고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여서 그랬나. 인간을 몰라서인가 아니면 내가 인간을 향해 비상식적인 기대를 하는 걸까. 

    집단상담에서 각자 자기 이슈를 내놓은 분들과 경험을 나누면서, 나의 고통을 상대화 할 수 있었다. 모든 고통에 경중을 나눌 수 없다는 것, 인간이 고통 앞에서 삶을 선택하는 힘이 있음을 배웠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이다. 의미는 쾌락보다 더 강한 원동력이라고 한다. 과거에 나는 고통을 앞에 두고 무감각을 선택했다. 나를 느끼지 못하게 했던 무감각은 나를 아프지 않게 보호했다. 그러나 무감각이 나를  성장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집단상담 후 나는 고통 앞에서 성장을 향해 고통을 회피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과거에 내가 자극과 반응이라는 극히 동물적인 행동을 취했다면 이제는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을 넓게 열어젖히려 한다. 넓게 펼쳐낸 공간 안에서 기억의 고통을 선택하기보다 내면에 깊숙이 연결된 지혜를 끌어올려 그 힘으로 삶을 선택하려 한다. 나는 계속 고통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찾으려 한다.

    개인상담과 집단상담의 과정에서 무엇보다 나를 깊게 지지해준 사람에게 나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키워내도록 선물을 받았다. 나도 내 자신에게 해주지 못하는 사랑과 애정을 받으면서 이제는 스스로 사랑과 치유의 에너지를 만들어내고자 노력한다. 사랑과 애정의 물꼬를 만들어준 인권재단 사람 활동가들과 활동가 휴식 지원 프로젝트 <일단, 쉬고>를 후원해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