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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쉬고] 우리에게 이런 날도 오는구나
    • 작성일
    • 2017.06.12
  • 우리에게 이런 날도 오는구나


    글_토닥토닥(유엔인권정책센터 )



    사이판의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공기는 우리가 처한 어둡고 답답한 상황과 너무나도 대비되었다. 작년 말을 기점으로 단체 내 평등문화 훼손을 비롯한 여러 문제가 발생하여 활동가들이 긴 싸움을 해왔던 터라 몸과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해있었다. 그랬기에 어느 때보다도 쉼이 절실했고, 사이판의 그림 같은 자연환경을 맘껏 즐기며 우리 코쿤 활동가 넷은 잠시나마 고통과 괴로움이 있는 한국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안식을 취할 수 있었다. 수개월 간 우리를 힘들게 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곳에서 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지낼 수 있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것이라면 오랜 시간 함께 어려움을 헤쳐 왔던 동료 한 명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주일과도 같은 1박3일

    우리는 여행 경비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1박 3일이라는 고된 일정을 소화하기로 결심했다.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많은 대도시에 가지 않고 휴양지를 택한 것은 완전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였지만, 처음에는 이런 일정으로 정말 '쉼'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걱정도 했다. 결국 우리에게는 몸은 조금 힘들더라도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잠은 부족했을지언정 많은 활동을 즐길 수 있게 해준 일정이었고, 덕분에 체감 상 일주일 정도 머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의 ‘쉼’을 얻는 것은 성공적이었다. 섬 전체도 한번 돌아봤고 사이판에서 몇 없는 명소인 만세절벽에도 갔다.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스노클링, 파라세일링 등 해양스포츠도 즐겼다. 사이판이 크기가 작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했던 것 같다. 사이판의 바다도 사진에서 봤던 것만큼 아름다웠고, 깨끗하고 수온도 적당해서 물놀이를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오랜 시간 함께한 사이였지만, 이곳에서 서로에게 처음으로 수영복 입은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처음에는 상당히 부끄러워하기도 했지만, 이내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모두 물놀이 하는 데에 정신이 팔렸다. 너도 나도 튜브에 올라타 어린아이처럼 물장구를 치기도 했고, 때로는 몸만 물에 띄운 채로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조금 힘들다 싶을 때는 해변에 누워 책을 보거나 앉아서 멍을 때리기도 했다.



    가끔 먼 하늘을 바라 볼 때 우리가 처한 상황과 이곳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겹쳐지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격하게 분노하며 싸웠는데, 이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평화롭게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잘 와 닿지도 않았다. 귀국하면 다시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실, 피하고 싶은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진 순간들도 가끔 있었으나, 그때마다 나쁜 일은 잠시 잊기로 다짐했다. 

    여행 중에 나름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사이판에서 마나가하 섬으로 이동하는 도중, 동료들이 함께 타고 있는 작은 배 위에서 속옷을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던 일도 있었다. 원래는 섬에 도착한 후 갈아입으려고 했으나, 패러세일링을 이동과 동시에 한다고 하여 바로 갈아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수건으로 중요 부위를 가려주기는 했지만 파도 때문에 언제 넘어질지 몰라서 불안했고 몸의 균형을 잡느라 애를 썼다. 또 다함께 마사지를 받게 된 일도 있었는데, 탈의실이 하나밖에 없어 마사지실에서 바로 옷을 벗으라는 점원의 말만 믿었다가, 테이블 위에 속옷만 입고 엎드려있는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인 매우 굴욕적인 경험도 하게 되었다. 의도치 않게 여행 내내 동료들 앞에서 탈의를 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고마운 동료들

    어쩌다보니 이번 여행의 준비 과정에서부터 활동가 각자 특별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프로젝트에 선정될 수 있도록 호소력 있는 지원서를 작성한 사람, 이번 여행을 강하게 추진하고 항공편을 예약한 사람, 숙소를 예약하고 이미 한 차례 사이판을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본의 아니게 안내를 맡았던 사람, 그리고 차를 운전한 사람이 있었다. 

    이미 여행을 계획했던 시점부터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고, 여행 일정도 고됐던 것은 물론,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제각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오랜 시간 한 공간에서 모여 사생활을 공유하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크고 작은 불화가 있을 법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하나 짜증이나 화를 내지 않은 것도 신기했고, 이는 다시 한 번 내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여행이 가능할 수 있게끔 각자 중요한 역할을 자처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 동료들에게 다시금 고마움을 느끼며, 이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앞으로의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실로의 복귀, 다시 싸움을 시작하다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했지만, 결국 꿈과도 같은 시간은 지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한국에 와있었다. 일정이 힘들기는 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행복한 일인 것 같다. 

    '현실적인 조건'을 전부 고려했다면 가지 못했을 여행이었던 것 같다. 어려움을 겪는 중에 누군가 강하게 추진해야 했고, 그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어야 했으며, 실제로 가서 즐겁고 쉼이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끔 해야 했다. 이를 가능하게 해준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장 힘들고 쉼에 대한 기대조차 할 수 없었던 시기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 우리는 다시 어려운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지만, 앞으로의 투쟁을 위한 재충전을 이루었다. 무엇보다 최고의 동료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의미로 남았다.